마이너 블로거의 포스팅 답지 않게 제법 많은 덧글이 달렸다. 또한 이 글에 대한 트랙백, 핑백 글은 물론 DreamersFleet(이하 DF) 후속 글도 두 편이 올라왔다. 본인과 DF, TTG 등의 포스팅에 공히 많은 역밸 제현의 의견이 올라왔음은 물론이다. 특히나 Shaw 님의 여러 덧글과, 번동아제님의 덧글은 부족한 학부생인 필자게 참으로 배울 것이 많았기에 얻고 가는 것이 많다. 이제 논의가 일단락된 듯 하지만 자아비판을 하면서 그 대상을 내게 돌리는 일을 당하는 것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특히나 위당의 원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벌이는 난독증과 허수아비 치기의 향연은 그야말로 실소를 금키 어려운 지경이다.
정인보(鄭寅普)는 1935년 1월 25일, 동아일보의 지면에〈고조선의 대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같은 제목으로 같읂해 2월 10일까지 11편의 연재를 계속하였는데, 그 가운데 1월 25일 사설에는 '고조선'이라는 국가명의 어원을 밝히고 규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설의 서두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네이버 뉴스 아카이브가 제공하고 있는 1935년 신문 텍스트를 본인이 직접 타이핑 하였다. 국한문병기와 당시 표기를 그대로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되, 띄어쓰기는 현행을 따르고, 또한 고전에서 인용한 경우라거나 출처를 밝히는 경우에는 따로 기호를 사용하여 괄호 안에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음.)
조선(朝鮮)은 동아(東亞)의 고족(古族)이라 그의 종(縱)을 연수(年數)로 산(算)하야 유구(悠久)하고 그의 횡(橫)을 지면(地面)으로 양(量)하야 광대(廣大)하니 단군(檀君)의 어우(御宇)ㅣ 비록 당요(唐堯)와 병시(幷時)라고 전(傳)하나 제이세부루(第二世夫婁)ㅣ 하(夏)에 왕회(往會)하고 하왕우(夏王禹)ㅣ 조선(朝鮮)에 내유(來遊) (『墨子』禹東敎乎九夷.) 함부터가 그때의 일체(一切) 발전(發展)이 발서 초매(草昧)를 넘어 치성(治成)에 달(達) 하얏음을 생각할 수 잇게 할 뿐 아니라'조선朝鮮'이라는 이름만 하야도 어떠한 일방(一方), 일국(一國)을 특칭(特稱)한것이 아니오 그 어원(語原)이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는 의의(意義)이니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문체가 극히 옛날의 문체라 나같은 까막눈이 어떻게 해의(解義)할 수 있겠는가마는) 말인 즉, '조선'은 본래 오래된 역사와 광활한 강역을 가졌던 나라로, '단군이 요 임금과 같은 때에 재위했다.'고 하지만, 하나라와 통교한 - 부루가 하나라에 가고 우가 조선으로 왔으니 - 것을 볼 때, 이미 그 때에는 그 국가의 발전 단계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고, '조선'이라는 이름 자체도 국가나 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관속된 토경"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
골자는 아래 두 가지이다.
① 조선(朝鮮)은 단순 국호(國號)가 아닌 동북아 일대에 살던 동이족과 그 집단에 대한 지칭이며 개념어이다. (1)
② 단군(檀君)에 대해서 단순히 요(堯)임금과 같은 때 재위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당시 조선은 이미 굉장히 발전되어 있었다.
조선을 국가, 혹은 지역에 대한 특칭에서 탈피하여 하나의 개념어로 규정하고 소위 동이(東夷)족의 시공간적 개념과 등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의 공간적 사실, 즉 영토와 비교하여 '조선'이라는 집단의 외연을 넓히는 논리로 작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국사교과서의 지도로 설명하면,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의 영역에 삼한의 영역이 '조선'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같은 집단의 영역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같은 사설, 바로 뒷 부분에 다시금 강조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상략) '조선(朝鮮)'은 한갓 “소속(所屬)”이라함에 끄치는 말이오 어떠한 구별칭(區別稱)이 아니니 피(彼)는 오히려 외타(外他)에 대(對)함이 잇음을 보이엇으되 차(此)는 일체동조(一體同祖) 뿐으로 천지간(天地間)에 우리 이외(以外)가 없이 동서남북(東西南北)이 한식구로만 지나던 그때를 여실(如實)실하게 나타낸 것이니 다른 것은 다만 두고라도 '조선(朝鮮)' 양자(兩字)ㅣ 고조선(古朝鮮)을 영로(映露)하고 남음이 잇다.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조선'이라는 두 글자, 즉 낱말은 '고조선'을 '덮고도 남는 정도'로 커다란 의미를 가진 개념어라는 말이고, 그 개념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이라는 존재 뿐 아니라 그 일대의 다른 동이족을 내외로 구분하지 않고 포함하는 말이라는 얘기임을 이렇게 스스로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고조선'을 넘어서서 '조선'이라고 하는, 즉 한칭(漢稱, 정인보는 이 연재 시리즈에서 한토인漢土人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말인 즉 한나라 사람이 부르는 명칭, 한나라 사람이 이름-을 말한다.) '동이족'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하나의 주장이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정인보의 사설 뒷부분에 나타나는 숙신, 식신, 직신, 조선의 음가 전역(轉譯) 문제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골자 ②의 내용은 2세 부루 때에 하나라 왕이 조선에 내유한 적도 있고, 부루가 직접 하나라고 건너간 적도 있는 만큼,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할 정도로 대단히 발전해 있는 상태였다-는 주장으로 풀이되는데, 조심스러우나마 이것은 정인보가 시간적 연원을 끌어 올리기 위해 내놓은 말이 아닌가 추측한다. 사실상 '발전'이라는 것이 개국과 동시에 고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거니와, 단순히 단군이 그 시대에 재위하고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중국과 대등할 만큼 발전할만한 시공간적 배경을 가졌다는 논조가 보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단순 추정에 불과하니 여러 제현들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제 다음 대목을 보자. 수일 전, 촉발되었던 논의에서 나왔던 그 부분이 바로 이제 나온다.
…… (상략) 조선(朝鮮)의 고음(古音)이 중국고문(中國古文)에는 혹(或) 식신(息愼)(『史記』「虞帝記」) 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숙신(肅愼)(『孔子家語』,『尙書傳』,『史記』「孔子世家」,『大戴禮』,『淮南子』등)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조선(朝鮮)(『管子』「揆度」,「輕重」,『全國策』, 『史記』「列傳」)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직신(稷愼)(『汲冢周書王會解』)이라고도 쓰이엇는대 실(實)은 모다 한 말의 전역(轉譯)이라 『管子』의 “發朝鮮之文皮”, “發朝鮮不朝”, “八千里之發朝鮮”의 “발조선(發朝鮮)”이 곧『史記』의 “발식신(發息愼)”, 『大戴禮』의 “발숙신(發肅愼)”이다. “숙(肅)”, “식(息)”, “직(稷)”의 상근(相近)함은 용이(容易)히 알 수 있으나 “조(朝)”는 “직(織)”의 초성(初聲)과는 가트되 삼(三)은 다 입성자(入聲字)오 일(一)은 평성자(平聲字)라 어찌하야 호전(互轉)하느냐고 무르리라. 물론(勿論) 이러케 구르는 것도 잇다. 그러나 “숙(肅)”을 북음(北音)으로는 “수(須)”와 가치 읽나니 “조(朝)”, “직(稷)”, “식(息)”의 전역(轉譯)됨이 문제(問題)될 것 없고 “신(愼)”, “선(鮮)”의 전(轉)은 더욱이 항례(恒例)라. 그러나 또 다시 무를 수 잇다. “숙신(肅愼)”이 “식신(息愼)”이오, “식신(息愼)”이 즉(卽) “직신(稷愼)”이오, “직신(稷愼)”이 즉(卽) “조선(朝鮮)”이라 함은 명백(明白)하다할지라도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정인보는 앞에서 "조선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개념화"를 말하다가 난데없이 조선의 고음 운운하는 말을 한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조선'이라는 말 가지고는 그가 말하던 "관속된 토경"의 의미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에, 조선의 이칭(異稱)들을 찾아서, 그 가운데에 그 의미가 규정된 것으로 하여금 '조선'이 "관속된 토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사실상 이 부분에서 들고 있는 숙신, 식신, 직신의 3가지 명칭은 이미 '숙신'에 대한 이므로, 숙신과 조선의 음가 전역(轉譯) 문제를 해결하면 답을 낼 수 있긴 하다. 때문에 정인보가 내세운 "조선=관속된 토경"의 주장을 완벽히 정립하기 위해서는 숙신, 식신, 직신과 조선 사이의 음가간 상호 전역 문제(이것이 정인보가 말한 호전互轉의 의미이다.)가 치밀하게 논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사이의 호전(互轉) 여부를 따지고 있는 이 부분이 〈고조선의 대간〉(1) 의 가장 첫머리, "조선이란 말은 관속된 토경이다."라는 주장 대한 논증부가 되는 것이다.
정인보의 논증 과정은 이러하다.
ㄱ. 조선의 고음을 숙신, 식신, 조선, 직신 등 다양하게 썼는데, 사실상 같은 말을 달리 적은 것이다.
ㄴ. 이 가운데 숙신, 식신, 직신은 서로 전역되는데 문제가 없다.
ㄷ. 조선은 그 음가의 차이로 전역되지 못한다고 하여 묻는데
ㄹ. 숙(肅)의 북음(北音)이 수(須)와 같으므로 조, 직, 식의 전역은 문제 될 것이 없다.
ㅁ. 신과 선은 호전되는 것에 하등의 문제가 없다.
정인보는 숙신, 식신, 직신, 조선을 "모다 한 말의 전역(轉譯)이라."고 적었다. 헌데 이것은 통설을 옮긴 것이 아니다. 통설을 옮긴 것이라면 구태여 뒤에 숙, 식, 직의 상근(相近)함과 숙, 식, 직과 조의 차이성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 결국 문단의 앞머리는 고전의 용례를 두고 정인보가 '같은 것으로 주장'한 것이고, 그 뒷부분은 그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헌데, ㄷ과 ㄹ 의 과정이 다소 뜬금없다. 애초에 '숙신=식신=조선=직신'이라는 말이 통설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넷을 갖다라고 주장할 때, 이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원문에서의 '호전 하느냐고 무르리라'는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정인보는 그것의 답으로 숙의 북음이 수이므로 조, 직, 식의 전역됨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누차 얘기했지만, 이건 잘못된 논증 방법이다.
(이 부분은 이미 Shaw님이 이 덧글에서 밝혀주셨으므로 간략히 넘어감.) 다른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숙, 식, 직, 조의 상호간 고음 전역 문제에 대해 초성을 먼저 꺼내고 있는 자체가 실수인데, 한자의 음차 문제는 기록 당시의 음가를 나타내는 글자를 사용한다. 따라서 중국의 음가를 대입해서 그 상관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한국어 음가에서 비롯된 초성 운운하는 얘기를 꺼낼 게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DF는 (1)과 (2)의 반론을 제기하였다. 정리하자면, 정인보는 "북음을 차용하여 고음을 맞추려 하지 않았고, 대신 북음에선 이러하니 이러할 수 있다."식으로 주장했으며, 필자와 초록불님이 "정인보는 숙의 북음이 수와 같이 읽히므로 숙의 고음이 수다-라고 단언한 적이 없는데 독심술을 행한다."고 하고 있다. 애초에 초록불님은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으셨으니 내가 알 수 없고, 필자야말로 글 어디에서도 "정인보는 숙을 북음으로 수와 같이 읽는다는 것을 근거로 숙의 고음이 수라고 하였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독심술은 대체 누가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더욱이 내 마음과는 전혀 틀린 독심술을. 필자의 이전 포스팅에서 해당 부분은 이러하다.
이미 유사성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정인보는 분명히 '직시'하고 있었다. 헌데 그 말을 뒤집기 위해 '숙'의 북음(北音)을 인용하여 숙, 식, 직, 조가 발음의 유사성에 따라 바뀌어 기재됨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될 수 없음'을 인정해 놓고 '이러이러한 것이 있으니 될수 있다.'라고 하는 꼴이다. 고조선의 외연과 연원을 확대하기 위한 견강부회가 맞다.
'숙'의 북음이 '수'라는 사실을 인용하여-라고 풀어 써 주기라도 해야 하나? 애초에 정인보가 "숙의 북음" 운운한 것은 입성자 숙, 식, 직과 평성자 조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꺼낸 카드이다. 따라서 '북음'을 인용하여 고대음을 '재단'하려 한 것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북음'에서의 변용을 근거로 '숙'의 고음 문제를 두루뭉술하게 때려'맞추어', '조'와의 음가 유사성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숙은 북음으로 수와 같게 읽히기도 하므로, 평성자 '조'와 같은 성조를 가질 수 있으므로, 평성자 간의 전역이라는 측면에서 문제 될 것이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풀어 쓴다고 하더라도 정인보는 '숙'의 고음이 모르는 상태에서 '송대 이후 북방 한자음'의 변용을 견강부회하여 억지로 조와의 전역 가능성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가지 더, 정인보는 왜 '숙'의 북음만 언급한 것일까? 기왕에 '숙'의 북음을 말했으니 다른 것도 북음을 소개하여 논증해야 그 논증이 종료된다고 하는데, 생각건대, 그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미 정인보는 숙신, 식신, 직신은 서로 전역되는 근거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것이 마치 '통설이라는 듯'한 논조로 이야기하고 있다.(숙, 식, 직의 상근함은 용이히 알 수 있으나- 운운.) 동시에 정인보가 뒤에 인용하고 있는 『만주원류고』에는 이미 숙신, 식신, 직신이 서로 같은 말이라고 규정짓고 있는데다가 정인보가 들고 있는 용례 출전 가운데에 '숙신'은 총 5가지의 고전에서 등장하고 있는 만큼 이 가운데 대표적인 명칭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조선과의 상관관계만 밝혀 내어도 둘 사이의 음가 유사성이야 충분히 논증 되는 부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인보의 다음 언급을 보자.
“조선(朝鮮)”의 어원(語原)을 엇지하야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하느냐 하리라. 이것은 『乾隆欽定滿洲源流考』에 국초(國初), 구칭(舊稱) “소속(所屬)” (관경管境의 의義니 마치 “거느린 바라” 함과 가틈.) 왈(曰) “주신(珠申)”, 역즉(亦卽) “숙신(肅愼)” 전음(轉音), 한(漢) 인부지원위(人不知原委), 수기이이지(遂岐而二之), 유지(猶之) 혹위(或爲) “직신(稷愼)”, 혹위(或爲) “식신(息愼)”, 기실(其實) 일야(一也) -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이쯤되면 『만주원류고』가 바이블 수준이 아닌가? 정인보는 물론이고 신채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들 두 사람은 공히 『만주원류고』라는 책에 대해서 지나치게 맹신하고 있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자체의 기록은 무조건 사실로 믿고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만주원류고』의 '주신'이라는 내용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생각해야 하고, 여진어, 즉 만주어와 우리말의 유사성을 다시 논증해야 하는데, 한자음을 한글 음가로 재단한 정인보는 여기는 그냥 뛰어 넘어갔다. 제일 중요한 논증이 빠졌다. 그래놓고 여러 사람들이 조선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기록한 사실을 옮기며 "그것은 잘못되었고, 안정복이 쓴 것이 그나마 좀 괜찮다." 정도로 정리한다.
이걸 논증이라고 할 수 있나? 글쎄, 아무리 독립운동가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정인보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업적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학자로서의 오류를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DF는 나에게 일갈했다. "억지 독심술 쓰지 말고 학문을 더럽히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라고 일갈했다.
학문은 그 논증과 서술이 명징해야 하고 명징하지 않은 것은 마땅히 타당한 추론 과정을 통해 최대한 명징하게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다. 학문과 '논증'의 개념이 뭔지나 알고 와서 씨부리기 바란다.
◆ 각주
(1) 정인보는 다음날인 1935년 1월 26일 연재분에서 〔우리는 조선(朝鮮)의 음(音)을 호(呼)하고, 저네는 조선(朝鮮)의 자(字)를 역(譯)하니 음(音)은 일정(一定)하되 자(字)는 수변(數變)함은 괴사(怪事)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로는 하등(何等)의 자호(自呼)한배 아니오 오즉 한토인(漢土人)으로부터 동방인(東方人)의 표덕적칭호(表德的稱呼)를 지은 것이 잇스니 "이(夷)"라는 것이 곧 이것이다.〕라고 적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일컬어 조선이라고 하였는데, 중국인들은 우리를 일컬어 이(夷)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 참고자료 : 정인보의 〈고조선의 대간〉(1) 전문 (타이핑 자료라 오타가 있을 수 있음.)
조선(朝鮮)은 동아(東亞)의 고족(古族)이라 그의 종(縱)을 연수(年數)로 산(算)하야 유구(悠久)하고 그의 횡(橫)을 지면(地面)으로 양(量)하야 광대(廣大)하니 단군(檀君)의 어우(御宇)ㅣ 비록 당요(唐堯)와 병시(幷時)라고 전(傳)하나 제이세부루(第二世夫婁)ㅣ 하(夏)에 왕회(往會)하고 하왕우(夏王禹)ㅣ 조선(朝鮮)에 내유(來遊) (『墨子』禹東敎乎九夷.) 함부터가 그때의 일체(一切) 발전(發展)이 발서 초매(草昧)를 넘어 치성(治成)에 달(達) 하얏음을 생각할 수 잇게 할 뿐 아니라「조선朝鮮」이라는 이름만 하야도 어떠한 일방(一方), 일국(一國)을 특칭(特稱)한것이 아니오 그 어원(語原)이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는 의의(意義)이니 치하(治下)에 국가(國家)를 중건(衆建)하야가지고 이를 총괄(總括)하야 부르는 회활(恢濶)한 명칭(名稱)인즉 부락(部落)으로서와 소국(小國)으로서 와를 떠난 대일통(大一統)의 결구(結構)ㅣ 일홈만에도 완연(完然)함은 무론이어니와 한토(漢土)로 말하면 가로되 천하(天下)라하고 가로되 우내(宇內)라 하면서도 그 결구(結構)를 호(呼)함에는 당(唐)이라 우(禹)라 하(夏)라하야 구별적표시(區別的表示)가 잇엇것마는 “조선(朝鮮)”은 한갓 “소속(所屬)”이라함에 끄치는 말이오 어떠한 구별칭(區別稱)이 아니니 피(彼)는 오히려 외타(外他)에 대(對)함이 잇음을 보이엇으되 차(此)는 일체동조(一體同祖) 뿐으로 천지간(天地間)에 우리 이외(以外)가 없이 동서남북(東西南北)이 한식구로만 지나던 그때를 여실(如實)실하게 나타낸 것이니 다른 것은 다만 두고라도 “조선(朝鮮)” 양자(兩字)ㅣ 고조선(古朝鮮)을 영로(映露)하고 남음이 잇다.
조선(朝鮮)의 고음(古音)이 중국고문(中國古文)에는 혹(或) “식신(息愼)”(『史記』「虞帝記」) 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숙신(肅愼)(『孔子家語』,『尙書傳』,『史記』「孔子世家」,『大戴禮』,『淮南子』등)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조선(朝鮮)(『管子』「揆度」,「輕重」,『全國策』, 『史記』「列傳」)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직신(稷愼)(『汲冢周書王會解』)이라고도 쓰이엇는대 실(實)은 모다 한 말의 전역(轉譯)이라 『管子』의 “發朝鮮之文皮”, “發朝鮮不朝”, “八千里之發朝鮮”의 “발조선(發朝鮮)”이 곧『史記』의 “발식신(發息愼)”, 『大戴禮』의 “발숙신(發肅愼)”이다. “숙(肅)”, “식(息)”, “직(稷)”의 상근(相近)함은 용이(容易)히 알 수 있으나 “조(朝)”는 “직(織)”의 초성(初聲)과는 가트되 삼(三)은 다 입성자(入聲字)오 일(一)은 평성자(平聲字)라 어찌하야 호전(互轉)하느냐고 무르리라. 물론(勿論) 이러케 구르는 것도 잇다. 그러나 “숙(肅)”을 북음(北音)으로는 “수(須)”와 가치 읽나니 “조(朝)”, “직(稷)”, “식(息)”의 전역(轉譯)됨이 문제(問題)될 것 없고 “신(愼)”, “선(鮮)”의 전(轉)은 더욱이 항례(恒例)라. 그러나 또 다시 무를 수 잇다. “숙신(肅愼)”이 “식신(息愼)”이오, “식신(息愼)”이 즉(卽) “직신(稷愼)”이오, “직신(稷愼)”이 즉(卽) “조선(朝鮮)”이라 함은 명백(明白)하다할지라도 “조선(朝鮮)”의 어원(語原)을 엇지하야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하느냐 하리라. 이것은 『乾隆欽定滿洲源流考』에 국초(國初), 구칭(舊稱) “소속(所屬)” (관경管境의 의義니 마치 “거느린 바라” 함과 가틈.) 왈(曰) “주신(珠申)”, 역즉(亦卽) “숙신(肅愼)” 전음(轉音), 한(漢) 인부지원위(人不知原委), 수기이이지(遂岐而二之), 유지(猶之) 혹위(或爲) “직신(稷愼)”, 혹위(或爲) “식신(息愼)”, 기실(其實) 일야(一也)
라한 것으로 족(足)히 증고(證考)할만한 것이니 “주신(珠申)”이 “숙신(肅愼)”임을 알면 “소속(所屬)”의 의(義) 일반(一般)임을 알 것이오 “숙신(肅愼)”이 “조선(朝鮮)”임을 알면 “주신(珠申)”의 음(音)과 호수(互殊)됨이 없음을 알것이엇마는 역대(歷代)의 사가(史家)들은 오즉 삼기향찰(三期鄕札)의 독법(讀法)에 몰두(沒頭)하야 “居東表日出之地, 故名朝鮮”(『輿地勝覽』)이라고 하거나 “鮮, 明也, 地在東方, 朝日鮮明, 故爲朝鮮”(金鶴峯誠一朝鮮考異)이라고 하거나 안정복(安鼎福)가튼 대가(大家)로도 혹언(或言)을 인(引)하야
東方, 卽白頭山之麓, 而白頭, 從鮮卑而來, 其本則崑崙之別支也, 後漢時, 東胡部落, 起其下者, 因山名, 爲號, 鮮卑國, 是也, 箕子之世, 遼地, 太半在其, 封域, 而在鮮卑山之東, 故稱爲朝鮮.
이라한 것이 비교적 근사(比較的近似)하다 하얏슬 뿐이오 “조선(朝鮮)”의 명칭이 얼마나 오램과 이 일홈을 지을 때 우리 말로 부른 것이 먼점인가 한자(漢字)로 쓴 것이 먼점인가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또 이것이 우리말로된 것이면 고조선 언어(古朝鮮言語)의 유적(遺跡)이 발상본토(發祥本土)에 남은 것이 교진(轎眞)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그때에 잇서 더욱이 바라지도 못할 바이라. “서나벌(徐那伐)”의 고훈(古訓)이 조모간(朝暮間)일인 것을 가지고 “신라(新羅)” 국호(國號)를 “일신(日新)”, “망라(網羅)”에다가 구차(苟且)히 부치고 “고려(高麗)”는 고구려의 약(畧)이라 그 고의(古義)는 차치(且置)하기로서니 “구(句)”의 잠산(暫刪)됨을 보고는 “리(麗)”의 평성(平聲)임도 모르고 거성(去聲)인 화려(華麗)의 “여(麗)”로 대어서 “산고(山高)”, “수려(水麗)”의 강설(强說)을 시(試)하는 것이야 가소(可笑)롭지 아니하냐? 이러케들 허무(虛無)하여섯는대 만주원류(滿洲源流)를 고(考)한 이들은 “주신(珠申)”, “숙신(肅愼)”은 병구(並究)할 줄 알앗스되 “조선(朝鮮)”이 곳 “숙신(肅愼)”임은 사급(思及)하지 못하야 구구(區區)히 일방(一方)에만 한(限)하야 가지고 “숙신(肅愼)”의 고지(故地)를 찾엇나니 비록 “관경(管境)”의 의(義)를 정해(正解)하지 아니함이 아니나 조선(朝鮮)의 일통(一統)의 회활(恢濶)함으로조차 이 칭호(稱號)가 생기고 이 칭호(稱號)에서 일통(一統)을 차저 볼 수 잇슴을 미처 겨를치 못한 것이다. 이제 다시 고조선내(古朝鮮內)의 각명(各名), 수칭(殊稱)을 진거(進擧)하야 그 통(統)한매 얼마나 넓엇슴을 상상(想像)케 하리라.
덧 1) 나는 첫 댓글부터 DF에게 존대하였으나, 난데없이 '하오체'를 쓰더니 그 뒤에는 자기 딴에는 아주 '준엄한 꾸짖음'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반말을 쓴다. 예의를 잘라 쳐먹었으니 내가 예의를 차릴 이유는 없으니 이 글을 시작으로 예의 따위는 치워둔다.
덧 2) 접기 전에, 지난번에 그냥 적었었는데, 생각해보니 견강부회의 뜻을 모르는 것 같아서 첨언. 견강부회는 본래 한대 이후 경학 연구 과정에서 산일된 경문의 해석과 보충 작업을 위해 생겨난 '나름 유구한 전통'이다. 단순히 "아닌 것을 끌어와 남을 속이는 것"이라고 치부할 내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견강부회를 결코 긍정해서는 안되겠지만. 대충 이러한 배경이라는게 있다는걸 알고 비판이 신중하고 어쩌고 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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