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무장서고淸武藏書庫 - 利構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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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2012년 방명록


  1. 2012년 방명록입니다. 안부라거나 링크 신고는 이 글을 통해 덧글로 받겠습니다.

  2. 작년 한해는 여러모로 시끌시끌 했었고, 그것이 올해라고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절망감이 먼저 들긴 하지만, 그래도 작년 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희망 정도는 가질 수 있을리라 봅니다.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 또 오시지 않는 분 모두 작년보다는 좀 더 나은 한해를, 또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보내실 수 있길 바랍니다.

  3. 본 블로그는 역사(歷史)와 전통 문화예술에 관련된 포스팅이 주로 이루어집니다. 역사 포스팅에 대한 일종의 도구로서 인문 철학 분야의 포스팅도 가끔 있을 수 있지만 지도 편달이 필요합니다.

  4. 본 블로그는 토론을 장려하지만, 속칭 '쿨게이' 성향의 논객들이라거나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출입을 삼가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피아간에 정신건강엔 안좋으니까요. 배설은 자기 블로그에서. 덧붙여서 토론과 논쟁을 장려한다고 해서 '반말 찍찍 싸대는' 것까지 장려하진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좀 못되어서 잘라내는 짓은 못하고, 대신 똑같이 응대합니다. 다만,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되면 덧글을 전면 삭제하고 해당 방문자를 차단하도록 하겠습니다.

  5. 메타블로그 지향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오픈된 개인 공간'으로서 제 블로그의 모든 관리 권한은 저의 자의에 있음을 다시 밝힙니다.

울화통. 비망록備忘錄


  정확히 2012년 1월 28일 토요일, 돈성의 본격 돈XX 결정체인 '리움 미술관'을 다녀왔다. 뭐, 내가 현대미술을 보러 거길 갈 리는 없고 (무식은 자랑이 아니라지만 공부도 안하고 전시보면서 "하암, 이게 뭐냐.. --;;" 하는 짓거리도 자랑은 아니다. 나는 아직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고, 미학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얼치기에 불과하니까.) 어제부로 전시가 종료된 <조선화원대전>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 간 것이다. 종료 직전이기도 했거니와 주말이라 사람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덕분에 제대로 관람하지 못한 것은 천추의 한이다. 좋은 작품들이 몇몇 나왔었는데 사람에 치이고 전체적으로 어두웠던 탓에 작품마다 달려 있던 캡션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휙휙 지나갔다. 사실 혼자 갔더라면 인파를 뚫고서라도 천천히, 자세히 보고 왔을 터이지만 내쪽도 나 제외 5명의 일행이 있던 터라 그것도 제대로 못하고 넘어갔는데 상당히 아쉽다. 지난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던 <초상화의 비밀> 전시는 그러지 않았는데 유독 이 전시만 사람이 몰렸던 것 같다.

  거기에 이번 전시는 그렇게 넓지 않은 공간에 많은 작품들을 억지로 '우겨 넣어 전시한' 감이 없지 않아서 조금의 사람만으로도 내부가 좀 꽉 차는 느낌이었고, 관람 동선도 썩 좋지 못했던 것 같다.(사실 전시 관람에서 동선 지켜가면서 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예 가이드 자체가 안된다. ㄷㄷㄷ) 하여간, 여러 작품들이 나왔고, 관련해서 도록도 샀겠다 리뷰를 쓰고 싶지만 그런 리뷰 잘 못쓰기도 하거니와 근래 들어서 호흡이 긴 글이 영 나오질 않는 이유로 미뤄두자.(이렇게 미뤄둔 전시가 벌써 3개 째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여간, 제목의 '울화통'이란 이 전시 때문에 울화통 터진 것은 아니고- 전시 후에 있었던 일행끼리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어떤 일 때문이다. 이미 정 떼고 나온 학교라지만 이 일행들이 그 학교에서 만난 일행들이고, 아직 자퇴한 상태도 못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그 소식이 들려올 수 밖에 없는데, 곧 복학을 압두고 있는 친구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는 것이 심히도 나를 자극한 것이 울화통의 원인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좀 심하다. 뭔 소리냐고? 사학과 전공 갯수를 '줄여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단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그 뿐이랴? 기존에 강의하던 강사들이 전부 갈렸다. 아무리 강사 목숨 파리 목숨이라지만 이건 좀 많이 아니지 않나? 교양에서 사학과 수업은 단 둘 뿐이다. 학교 정책이 단순하게 바뀐 것일 수도 있지만 이건 좀 많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칭 경기 북부권 유일의 종합대학-이라고 하는데 그 홍보 간판도 떼어버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여담.

  저 대화 때문에 취하지 않으려 했다가 되려 말로 취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어째 울화통 삭힐 술 외에는 아무것도 없게 한단 말이냐? 말세다. 말세야.

편입 재수 확정 비망록備忘錄


  편입 재수 확정. 주변에서는 수능도 재수하더니 편입도 재수하냐며 비아냥 대는 것이 3분의 1, 워드 4수했으니 편입도 그렇게 할거냐며 놀리는게 3분의 1, 저런, 그런데 계획은 있니? 라면서 걱정하는 부류가 3분의 1이다. 반응들을 접하고나니 더 짜증나기는 하는데 어쩌랴? 내 잘못인 것을. 기어이 미루어 오던 가채점을 했는데, 가채점 결과 때문에 사실 더 혈압이 오를 뻔 했다. 각 대학별로 약 두문제 내지 세문제만 더 맞췄으면 합격선인 것을 어떻게 지원한 곳 중에 한 군데도 그 두문제 더 맞는걸 더 못하는지. 하여간- 요는 다시 공부하자-는 것. 이제 놀면서 독학은 안된다. 알바 하면서 학원을 알아봐야 겠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알바를 어떻게 구하냐는거지. 학원비 충당할 만큼의 알바를... 동시에 시간도 건져야 하는데. 큰일은 큰일이다. 거 참.

- 비망록備忘錄


  6개 중 발표가 난 것은 2개, 본 것은 4개- 밝지 않다. 또 1년을 허송해야 할거라는 불안이 엄습했고, 뒤이어 분통이 치밀어 올라 결국 피를 토하고 말았다. 목구멍 뒤로 욕이 차 올랐다. 젠장. 이 빌어먹을 새끼는 어째서 이다지 멍청한가? 이젠 분하다 못해 치욕스러운 지경이라.

2012년 첫 잡담 비망록備忘錄


  1. 임진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모든 분들께 만복이 두루가옵기를 청합니다. 비나리 한자락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테러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자제하겠습니다.(웃음)

  2. 방명록에도 썼지만, 어떤 해이던지 '다사다난'의 한 마디로 정리가 될 터이고, 작년도 그러했으니 올해라고 별달리 나아질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희망을 갖고 올해도 열심히 살려 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뿐 아니라 이곳에서도 양질의 포스팅으로 알찬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싶고요.

  3. 어제 저는 송년, 그리고 신년을 겸해서 서울 모처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사실 이 모임 때문에 그 전날이었던 역밸 모임에 가질 못했습니다만, 그게 좀 아쉽긴 했어도 오래간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 술도 좀 거하게 취하고 기분좋게 보내었습니다. 들 잘 보내셨길 바랍니다.

  4. 신년 첫날 치고는 다소 조용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시대가 얼어있는 것 때문이 아닐지.

  5. 하여간, 다시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1년 방명록


  1. 얼마 찾아오시지도 않는 블로그라 방명록을 달아놓기도 뭐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얼음집을 폐쇄할 생각은 없다지요. ㅎㅎㅎ 얼음집도 얼음집만의 색을 부여해서 운영해 볼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요. :)

  2. 경인년이 힘드셨던 분들은 신묘년은 힘 안들게 보내시고, 경인년에 힘 안드셨던 분들은 신묘년엔 더 힘 안들이고 보내시길 빕니다.

  3. 네이버 블로그는 2010년 방명록에 주소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또 거기로. ^^

  4. 쿨게이 서구빠,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출입 금지할 것을 권합니다. 보시면 정신건강에 안좋으실테고 저랑 붙으시는 것도 그렇게 정신건강엔 안좋으실 거에요. ^^

  5. 4로 끝내기 싫습니다.(응?&도주)

2011년 내 이글루 결산

2011 내 이글루 결산

1년동안 작성한 푸른화염님의 결산내역입니다. 이글루에 포스팅하여 공유해보세요.
본문이 500px 이하인 스킨은 지원하지 않아 포스트가 잘려보일 수 있습니다.
결산기간 : 2011년 12월 26일~ 2012년 1월 9일

포스트[37]

 5 2 4 4 4 3 1 4 1 4 5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덧글[264]

 19 4 93 26 10 5 11 5 2 10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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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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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낸 글 통계[64]

 11 47 0 2 4 0  
 테마태그가든보낸트랙백보낸핑백블로거뉴스 

포스트 수 비교

 (2010년 포스트 : 43개)
20102010  20112011
 1 5 1 2 4 17 4 5 4 5 3 3 1 6 4 3 1 4 2 5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명예의 전당

1년동안 작성한 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363장 분량이며, 원고 두께는 약 3cm 입니다.
1년 동안의 글을 문고판 시리즈로 낸다면 2권까지 낼 수 있겠네요. 푸른화염님은 올 한해 이글루스에서 18,145번째로 게시물을 가장 많이 작성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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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위: 음악(2회)|1910~1930년대 판소리 명창 녹음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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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위:DreamersFleet (20회)
  2. 2위:진성당거사 (20회)
  3. 3위:들꽃향기 (14회)
내 이글루결산

  올해부터는 연말마다 이 행동을 한번 해 볼까-하는데……. 생각해보니 이글루스 내에도 지각변동이 한 차례 있던 적이 있었으므로 이게 의미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활동 TOP 5 만큼은 지우고 싶더군요. 사람 성질 돋구는 것도 아니고……. ㄱ-

잡상 111220 비망록備忘錄


  1. 근래에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포스팅 거리를 생각하는 일 조차도 썩 쉽지 못합니다. 해서 얼음집도, 네이버 블로그도 포스팅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딱히 스트레스 풀 방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못되기에 위키에 기여하는 것으로 쉬는 시간은 소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아니고 국악인들에 대한 정보가 부정확한 것들이 많아서요. 심지어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위키의 시스템을 모르다보니 어떻게 해결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하여간, 아직까지는 4분의 국악인에 대해서만 내용보충 및 새문서 작성을 해 둔 상태입니다. 저 '모종이 이유'라는 것이 해결되면 조금 더 활발히 기여해 볼 생각입니다. 이 얘기를 사실 몇달 전에 진성당거사님 앞에서 한 적이 있는데 실제 기여는 불과 며칠 전에 시작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나 파안대소합니다.(먼산)

  2. 내일 모교에서 조그마한 규모의 '체험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위촉(?????) 되었습니다. 체험 종목은 국악이고 체험 대상자는 모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일본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대규모는 아니고 30명, 소규모를 대상으로 하는 체험 프로그램인데 글쎄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말 재간 없는 것은 고질병이라서요. 하여간 덕분에 그 준비가 더해져 다소는 머리 아픈 한 주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3. 그 격조한 가운데에 네이버에는 인수대비 관련해서 포스팅을 좀 했고, 얼음집에는 불과 방금 전까지 이어진 논쟁 관련한 두개의 포스팅을 했지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료만으로 포스팅 하려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더군요. 자료를 모은다고 모으는 사람인데 - 어떠한 사정으로 저는 자료 수집벽 비슷한게 생겼습니다. - 포스팅 한번 하려고 하면 부족하다를 체감합니다. 아직 멀었나봅니다.

  4. 그건 그렇고 넋두리입니다만- 넷상의 논쟁이라는 것은 유독 사람 넋두리를 더 많이 유발시키는 것 같습니다. 원래 논쟁을 즐겨하는 편입니다만, 오프 논쟁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하여간-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이 시작되었는지는 아마 직접 보시면 알겁니다.(먼산)

  5. 하여간, 저는 원래 성인군자가 아니라서 상대방이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저 역시 똑같이 대해주는 편입니다. 어리석은 짓이긴 한데 성격이 못되어서 그런지 그렇게 대응이 되더군요. 덕분에 다소 무개념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을 후회합니다. 동시에 더 많은 자료 수집을 통해 더 많이 공부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도 유감으로 남고요. 그러나 그걸 제외하면 나름 남는건 있는 키배였습니다.

  6. 올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사실 한해를 정리할만한 시간은 좀 있었으면 좋겠지만, 여의치는 않군요. 아마 내주 쯤에는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긴 합니다만- 무튼. 올 한해에는 제가 도록을 좀 많이 구입했던 한해였습니다. 일부러 논의가 중심이 되는 책들은 구입하지 않았지요. 괜히 그거 읽다가 또 그쪽으로 천착하게 될 것 같아서요. 도록들을 구입하고 어떻게 할까 고심하던 차에 스캔을 떠 놓기로 했습니다. 헌데 저는 스캔하는 재주가 영 달리는데다가 집 스캐너도 하던 중에 고물이 되어버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군요.

  7. 그나저나 지난번 초록불님의 역사책 추천 제안을 계기로 책을 정리하면서 쭉 훑어 보았습니다.(정독하기 보다는 여러번 많이 읽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니 난독증 증세를 보이는 것일지도요. -먼산-) 하여간, 보고 나니 참 희한한 책들이 많다-는 생각이 문득.. 마도서도 한권 있었고 분류가 괴이한 책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소설은 얼마 없는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문학을 좋아하는데 말이지요. ㅎㅎ

1935년 1월 25일자 정인보의 사설〈고조선(古朝鮮)의 대간(大幹)〉(1)에 대한 잡상. └사부史部


  부제 : 누가 독심술을 시전하고 있는가?

  누가 단장취의(斷章取義) 하고 있는가? 外.

  마이너 블로거의 포스팅 답지 않게 제법 많은 덧글이 달렸다. 또한 이 글에 대한 트랙백, 핑백 글은 물론 DreamersFleet(이하 DF) 후속 글도 두 편이 올라왔다. 본인과 DF, TTG 등의 포스팅에 공히 많은 역밸 제현의 의견이 올라왔음은 물론이다. 특히나 Shaw 님의 여러 덧글과, 번동아제님의 덧글은 부족한 학부생인 필자게 참으로 배울 것이 많았기에 얻고 가는 것이 많다. 이제 논의가 일단락된 듯 하지만 자아비판을 하면서 그 대상을 내게 돌리는 일을 당하는 것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특히나 위당의 원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벌이는 난독증과 허수아비 치기의 향연은 그야말로 실소를 금키 어려운 지경이다.

<그림1> 난독증의 전형적 사례


  정인보(鄭寅普)는 1935년 1월 25일, 동아일보의 지면에〈고조선의 대간〉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같은 제목으로 같읂해 2월 10일까지 11편의 연재를 계속하였는데, 그 가운데 1월 25일 사설에는 '고조선'이라는 국가명의 어원을 밝히고 규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설의 서두에는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네이버 뉴스 아카이브가 제공하고 있는 1935년 신문 텍스트를 본인이 직접 타이핑 하였다. 국한문병기와 당시 표기를 그대로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되, 띄어쓰기는 현행을 따르고, 또한 고전에서 인용한 경우라거나 출처를 밝히는 경우에는 따로 기호를 사용하여 괄호 안에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음.)

 

조선(朝鮮)은 동아(東亞)의 고족(古族)이라 그의 종(縱)을 연수(年數)로 산(算)하야 유구(悠久)하고 그의 횡(橫)을 지면(地面)으로 양(量)하야 광대(廣大)하니 단군(檀君)의 어우(御宇)ㅣ 비록 당요(唐堯)와 병시(幷時)라고 전(傳)하나 제이세부루(第二世夫婁)ㅣ 하(夏)에 왕회(往會)하고 하왕우(夏王禹)ㅣ 조선(朝鮮)에 내유(來遊) (『墨子』禹東敎乎九夷.) 함부터가 그때의 일체(一切) 발전(發展)이 발서 초매(草昧)를 넘어 치성(治成)에 달(達) 하얏음을 생각할 수  잇게 할 뿐 아니라'조선朝鮮'이라는 이름만 하야도 어떠한 일방(一方), 일국(一國)을 특칭(特稱)한것이 아니오 그 어원(語原)이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는 의의(意義)이니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문체가 극히 옛날의 문체라 나같은 까막눈이 어떻게 해의(解義)할 수 있겠는가마는) 말인 즉, '조선'은 본래 오래된 역사와 광활한 강역을 가졌던 나라로, '단군이 요 임금과 같은 때에 재위했다.'고 하지만, 하나라와 통교한 - 부루가 하나라에 가고 우가 조선으로 왔으니 - 것을 볼 때, 이미 그 때에는 그 국가의 발전 단계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고, '조선'이라는 이름 자체도 국가나 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관속된 토경"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

  골자는 아래 두 가지이다.

  ① 조선(朝鮮)은 단순 국호(國號)가 아닌 동북아 일대에 살던 동이족과 그 집단에 대한 지칭이며 개념어이다. (1)
  ② 단군(檀君)에 대해서 단순히 요(堯)임금과 같은 때 재위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당시 조선은 이미 굉장히 발전되어 있었다. 

  조선을 국가, 혹은 지역에 대한 특칭에서 탈피하여 하나의 개념어로 규정하고 소위 동이(東夷)족의 시공간적 개념과 등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의 공간적 사실, 즉 영토와 비교하여 '조선'이라는 집단의 외연을 넓히는 논리로 작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국사교과서의 지도로 설명하면,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의 영역에 삼한의 영역이 '조선'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같은 집단의 영역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같은 사설, 바로 뒷 부분에 다시금 강조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상략) '조선(朝鮮)'은 한갓 “소속(所屬)”이라함에 끄치는 말이오 어떠한 구별칭(區別稱)이 아니니 피(彼)는 오히려 외타(外他)에 대(對)함이 잇음을 보이엇으되 차(此)는 일체동조(一體同祖) 뿐으로 천지간(天地間)에 우리 이외(以外)가 없이 동서남북(東西南北)이 한식구로만 지나던 그때를 여실(如實)실하게 나타낸 것이니 다른 것은 다만 두고라도 '조선(朝鮮)' 양자(兩字)ㅣ 고조선(古朝鮮)을 영로(映露)하고 남음이 잇다.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조선'이라는 두 글자, 즉 낱말은 '고조선'을 '덮고도 남는 정도'로 커다란 의미를 가진 개념어라는 말이고, 그 개념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조선이라는 존재 뿐 아니라 그 일대의 다른 동이족을 내외로 구분하지 않고 포함하는 말이라는 얘기임을 이렇게 스스로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고조선'을 넘어서서 '조선'이라고 하는, 즉 한칭(漢稱, 정인보는 이 연재 시리즈에서 한토인漢土人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말인 즉 한나라 사람이 부르는 명칭, 한나라 사람이 이름-을 말한다.) '동이족'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하나의 주장이다. 후술할 내용이지만, 정인보의 사설 뒷부분에 나타나는 숙신, 식신, 직신, 조선의 음가 전역(轉譯) 문제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골자 ②의 내용은 2세 부루 때에 하나라 왕이 조선에 내유한 적도 있고, 부루가 직접 하나라고 건너간 적도 있는 만큼,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할 정도로 대단히 발전해 있는 상태였다-는 주장으로 풀이되는데, 조심스러우나마 이것은 정인보가 시간적 연원을 끌어 올리기 위해 내놓은 말이 아닌가 추측한다. 사실상 '발전'이라는 것이 개국과 동시에 고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거니와, 단순히 단군이 그 시대에 재위하고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중국과 대등할 만큼 발전할만한 시공간적 배경을 가졌다는 논조가 보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단순 추정에 불과하니 여러 제현들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제 다음 대목을 보자. 수일 전, 촉발되었던 논의에서 나왔던 그 부분이 바로 이제 나온다.
  

…… (상략) 조선(朝鮮)의 고음(古音)이 중국고문(中國古文)에는 혹(或) 식신(息愼)(『史記』「虞帝記」) 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숙신(肅愼)(『孔子家語』,『尙書傳』,『史記』「孔子世家」,『大戴禮』,『淮南子』등)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조선(朝鮮)(『管子』「揆度」,「輕重」,『全國策』, 『史記』「列傳」)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직신(稷愼)(『汲冢周書王會解』)이라고도 쓰이엇는대 실(實)은 모다 한 말의 전역(轉譯)이라 『管子』의 “發朝鮮之文皮”, “發朝鮮不朝”, “八千里之發朝鮮”의 “발조선(發朝鮮)”이 곧『史記』의 “발식신(發息愼)”, 『大戴禮』의 “발숙신(發肅愼)”이다. “숙(肅)”, “식(息)”, “직(稷)”의 상근(相近)함은 용이(容易)히 알 수 있으나 “조(朝)”는 “직(織)”의 초성(初聲)과는 가트되 삼(三)은 다 입성자(入聲字)오 일(一)은 평성자(平聲字)라 어찌하야 호전(互轉)하느냐고 무르리라. 물론(勿論) 이러케 구르는 것도 잇다. 그러나 “숙(肅)”을 북음(北音)으로는 “수(須)”와 가치 읽나니 “조(朝)”, “직(稷)”, “식(息)”의 전역(轉譯)됨이 문제(問題)될 것 없고 “신(愼)”, “선(鮮)”의 전(轉)은 더욱이 항례(恒例)라. 그러나 또 다시 무를 수 잇다. “숙신(肅愼)”이 “식신(息愼)”이오, “식신(息愼)”이 즉(卽) “직신(稷愼)”이오, “직신(稷愼)”이 즉(卽) “조선(朝鮮)”이라 함은 명백(明白)하다할지라도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정인보는 앞에서 "조선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개념화"를 말하다가 난데없이 조선의 고음 운운하는 말을 한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조선'이라는 말 가지고는 그가 말하던 "관속된 토경"의 의미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에, 조선의 이칭(異稱)들을 찾아서, 그 가운데에 그 의미가 규정된 것으로 하여금 '조선'이 "관속된 토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사실상 이 부분에서 들고 있는 숙신, 식신, 직신의 3가지 명칭은 이미 '숙신'에 대한 이므로, 숙신과 조선의 음가 전역(轉譯) 문제를 해결하면 답을 낼 수 있긴 하다. 때문에 정인보가 내세운 "조선=관속된 토경"의 주장을 완벽히 정립하기 위해서는 숙신, 식신, 직신과 조선 사이의 음가간 상호 전역 문제(이것이 정인보가 말한 호전互轉의 의미이다.)가 치밀하게 논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사이의 호전(互轉) 여부를 따지고 있는 이 부분이 〈고조선의 대간〉(1) 의 가장 첫머리, "조선이란 말은 관속된 토경이다."라는 주장 대한 논증부가 되는 것이다.

  정인보의 논증 과정은 이러하다.

  ㄱ. 조선의 고음을 숙신, 식신, 조선, 직신 등 다양하게 썼는데, 사실상 같은 말을 달리 적은 것이다.
  ㄴ. 이 가운데 숙신, 식신, 직신은 서로 전역되는데 문제가 없다.
  ㄷ. 조선은 그 음가의 차이로 전역되지 못한다고 하여 묻는데
  ㄹ. 숙(肅)의 북음(北音)이 수(須)와 같으므로 조, 직, 식의 전역은 문제 될 것이 없다.
  ㅁ. 신과 선은 호전되는 것에 하등의 문제가 없다.

  정인보는 숙신, 식신, 직신, 조선을 "모다 한 말의 전역(轉譯)이라."고 적었다. 헌데 이것은 통설을 옮긴 것이 아니다. 통설을 옮긴 것이라면 구태여 뒤에 숙, 식, 직의 상근(相近)함과 숙, 식, 직과 조의 차이성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 결국 문단의 앞머리는 고전의 용례를 두고 정인보가 '같은 것으로 주장'한 것이고, 그 뒷부분은 그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헌데, ㄷ과 ㄹ 의 과정이 다소 뜬금없다. 애초에 '숙신=식신=조선=직신'이라는 말이 통설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넷을 갖다라고 주장할 때, 이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원문에서의 '호전 하느냐고 무르리라'는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정인보는 그것의 답으로 숙의 북음이 수이므로 조, 직, 식의 전역됨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누차 얘기했지만, 이건 잘못된 논증 방법이다.

  (이 부분은 이미 Shaw님이 이 덧글에서 밝혀주셨으므로 간략히 넘어감.) 다른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숙, 식, 직, 조의 상호간 고음 전역 문제에 대해 초성을 먼저 꺼내고 있는 자체가 실수인데, 한자의 음차 문제는 기록 당시의 음가를 나타내는 글자를 사용한다. 따라서 중국의 음가를 대입해서 그 상관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 한국어 음가에서 비롯된 초성 운운하는 얘기를 꺼낼 게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DF는 (1)(2)의 반론을 제기하였다. 정리하자면, 정인보는 "북음을 차용하여 고음을 맞추려 하지 않았고, 대신 북음에선 이러하니 이러할 수 있다."식으로 주장했으며, 필자와 초록불님이 "정인보는 숙의 북음이 수와 같이 읽히므로 숙의 고음이 수다-라고 단언한 적이 없는데 독심술을 행한다."고 하고 있다. 애초에 초록불님은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으셨으니 내가 알 수 없고, 필자야말로 글 어디에서도 "정인보는 숙을 북음으로 수와 같이 읽는다는 것을 근거로 숙의 고음이 수라고 하였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독심술은 대체 누가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더욱이 내 마음과는 전혀 틀린 독심술을. 필자의 이전 포스팅에서 해당 부분은 이러하다.

 

이미 유사성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정인보는 분명히 '직시'하고 있었다. 헌데 그 말을 뒤집기 위해 '숙'의 북음(北音)을 인용하여 숙, 식, 직, 조가 발음의 유사성에 따라 바뀌어 기재됨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될 수 없음'을 인정해 놓고 '이러이러한 것이 있으니 될수 있다.'라고 하는 꼴이다. 고조선의 외연과 연원을 확대하기 위한 견강부회가 맞다.

  

  '숙'의 북음이 '수'라는 사실을 인용하여-라고 풀어 써 주기라도 해야 하나? 애초에 정인보가 "숙의 북음" 운운한 것은 입성자 숙, 식, 직과 평성자 조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꺼낸 카드이다. 따라서 '북음'을 인용하여 고대음을 '재단'하려 한 것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북음'에서의 변용을 근거로 '숙'의 고음 문제를 두루뭉술하게 때려'맞추어', '조'와의 음가 유사성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숙은 북음으로 수와 같게 읽히기도 하므로, 평성자 '조'와 같은 성조를 가질 수 있으므로, 평성자 간의 전역이라는 측면에서 문제 될 것이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풀어 쓴다고 하더라도 정인보는 '숙'의 고음이 모르는 상태에서 '송대 이후 북방 한자음'의 변용을 견강부회하여 억지로 조와의 전역 가능성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가지 더, 정인보는 왜 '숙'의 북음만 언급한 것일까? 기왕에 '숙'의 북음을 말했으니 다른 것도 북음을 소개하여 논증해야 그 논증이 종료된다고 하는데, 생각건대, 그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미 정인보는 숙신, 식신, 직신은 서로 전역되는 근거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것이 마치 '통설이라는 듯'한 논조로 이야기하고 있다.(숙, 식, 직의 상근함은 용이히 알 수 있으나- 운운.) 동시에 정인보가 뒤에 인용하고 있는 『만주원류고』에는 이미 숙신, 식신, 직신이 서로 같은 말이라고 규정짓고 있는데다가 정인보가 들고 있는 용례 출전 가운데에 '숙신'은 총 5가지의 고전에서 등장하고 있는 만큼 이 가운데 대표적인 명칭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조선과의 상관관계만 밝혀 내어도 둘 사이의 음가 유사성이야 충분히 논증 되는 부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인보의 다음 언급을 보자. 

“조선(朝鮮)”의 어원(語原)을 엇지하야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하느냐 하리라. 이것은 『乾隆欽定滿洲源流考』에 국초(國初), 구칭(舊稱) “소속(所屬)” (관경管境의 의義니 마치 “거느린 바라” 함과 가틈.) 왈(曰) “주신(珠申)”, 역즉(亦卽) “숙신(肅愼)” 전음(轉音), 한(漢) 인부지원위(人不知原委), 수기이이지(遂岐而二之), 유지(猶之) 혹위(或爲) “직신(稷愼)”, 혹위(或爲) “식신(息愼)”, 기실(其實) 일야(一也) - (하략) …… - 정인보,《5천년간 조선의 얼》[19]〈고조선의 대간〉(1), 1935. 1. 25.

  이쯤되면 『만주원류고』가 바이블 수준이 아닌가? 정인보는 물론이고 신채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들 두 사람은 공히 『만주원류고』라는 책에 대해서 지나치게 맹신하고 있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자체의 기록은 무조건 사실로 믿고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만주원류고』의 '주신'이라는 내용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생각해야 하고, 여진어, 즉 만주어와 우리말의 유사성을 다시 논증해야 하는데, 한자음을 한글 음가로 재단한 정인보는 여기는 그냥 뛰어 넘어갔다. 제일 중요한 논증이 빠졌다. 그래놓고 여러 사람들이 조선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기록한 사실을 옮기며 "그것은 잘못되었고, 안정복이 쓴 것이 그나마 좀 괜찮다." 정도로 정리한다.

  이걸 논증이라고 할 수 있나? 글쎄, 아무리 독립운동가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정인보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업적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학자로서의 오류를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DF는 나에게 일갈했다. "억지 독심술 쓰지 말고 학문을 더럽히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라고 일갈했다.

  학문은 그 논증과 서술이 명징해야 하고 명징하지 않은 것은 마땅히 타당한 추론 과정을 통해 최대한 명징하게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다. 학문과 '논증'의 개념이 뭔지나 알고 와서 씨부리기 바란다.

◆ 각주                                     

  (1)
정인보는 다음날인 1935년 1월 26일 연재분에서 〔우리는 조선(朝鮮)의 음(音)을 호(呼)하고, 저네는 조선(朝鮮)의 자(字)를 역(譯)하니 음(音)은 일정(一定)하되 자(字)는 수변(數變)함은 괴사(怪事)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로는 하등(何等)의 자호(自呼)한배 아니오 오즉 한토인(漢土人)으로부터 동방인(東方人)의 표덕적칭호(表德的稱呼)를 지은 것이 잇스니 "이(夷)"라는 것이 곧 이것이다.〕라고 적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일컬어 조선이라고 하였는데, 중국인들은 우리를 일컬어 이(夷)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 참고자료 : 정인보의 〈고조선의 대간〉(1) 전문 (타이핑 자료라 오타가 있을 수 있음.)

 

  조선(朝鮮)은 동아(東亞)의 고족(古族)이라 그의 종(縱)을 연수(年數)로 산(算)하야 유구(悠久)하고 그의 횡(橫)을 지면(地面)으로 양(量)하야 광대(廣大)하니 단군(檀君)의 어우(御宇)ㅣ 비록 당요(唐堯)와 병시(幷時)라고 전(傳)하나 제이세부루(第二世夫婁)ㅣ 하(夏)에 왕회(往會)하고 하왕우(夏王禹)ㅣ 조선(朝鮮)에 내유(來遊) (『墨子』禹東敎乎九夷.) 함부터가 그때의 일체(一切) 발전(發展)이 발서 초매(草昧)를 넘어 치성(治成)에 달(達) 하얏음을 생각할 수  잇게 할 뿐 아니라「조선朝鮮」이라는 이름만 하야도 어떠한 일방(一方), 일국(一國)을 특칭(特稱)한것이 아니오 그 어원(語原)이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는 의의(意義)이니 치하(治下)에 국가(國家)를 중건(衆建)하야가지고 이를 총괄(總括)하야 부르는 회활(恢濶)한 명칭(名稱)인즉 부락(部落)으로서와 소국(小國)으로서 와를 떠난 대일통(大一統)의 결구(結構)ㅣ 일홈만에도 완연(完然)함은 무론이어니와 한토(漢土)로 말하면 가로되 천하(天下)라하고 가로되 우내(宇內)라 하면서도 그 결구(結構)를 호(呼)함에는 당(唐)이라 우(禹)라 하(夏)라하야 구별적표시(區別的表示)가 잇엇것마는 “조선(朝鮮)”은 한갓 “소속(所屬)”이라함에 끄치는 말이오 어떠한 구별칭(區別稱)이 아니니 피(彼)는 오히려 외타(外他)에 대(對)함이 잇음을 보이엇으되 차(此)는 일체동조(一體同祖) 뿐으로 천지간(天地間)에 우리 이외(以外)가 없이 동서남북(東西南北)이 한식구로만 지나던 그때를 여실(如實)실하게 나타낸 것이니 다른 것은 다만 두고라도 “조선(朝鮮)” 양자(兩字)ㅣ 고조선(古朝鮮)을 영로(映露)하고 남음이 잇다.


조선(朝鮮)의 고음(古音)이 중국고문(中國古文)에는 혹(或) “식신(息愼)”(『史記』「虞帝記」) 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숙신(肅愼)(『孔子家語』,『尙書傳』,『史記』「孔子世家」,『大戴禮』,『淮南子』등)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조선(朝鮮)(『管子』「揆度」,「輕重」,『全國策』, 『史記』「列傳」)이라고도 쓰이고, 혹(或) 직신(稷愼)(『汲冢周書王會解』)이라고도 쓰이엇는대 실(實)은 모다 한 말의 전역(轉譯)이라 『管子』의 “發朝鮮之文皮”, “發朝鮮不朝”, “八千里之發朝鮮”의 “발조선(發朝鮮)”이 곧『史記』의 “발식신(發息愼)”, 『大戴禮』의 “발숙신(發肅愼)”이다. “숙(肅)”, “식(息)”, “직(稷)”의 상근(相近)함은 용이(容易)히 알 수 있으나 “조(朝)”는 “직(織)”의 초성(初聲)과는 가트되 삼(三)은 다 입성자(入聲字)오 일(一)은 평성자(平聲字)라 어찌하야 호전(互轉)하느냐고 무르리라. 물론(勿論) 이러케 구르는 것도 잇다. 그러나 “숙(肅)”을 북음(北音)으로는 “수(須)”와 가치 읽나니 “조(朝)”, “직(稷)”, “식(息)”의 전역(轉譯)됨이 문제(問題)될 것 없고 “신(愼)”, “선(鮮)”의 전(轉)은 더욱이 항례(恒例)라. 그러나 또 다시 무를 수 잇다. “숙신(肅愼)”이 “식신(息愼)”이오, “식신(息愼)”이 즉(卽) “직신(稷愼)”이오, “직신(稷愼)”이 즉(卽) “조선(朝鮮)”이라 함은 명백(明白)하다할지라도 “조선(朝鮮)”의 어원(語原)을 엇지하야 “관속(管屬)된 토경(土境)”이라하느냐 하리라. 이것은 『乾隆欽定滿洲源流考』에 국초(國初), 구칭(舊稱) “소속(所屬)” (관경管境의 의義니 마치 “거느린 바라” 함과 가틈.) 왈(曰) “주신(珠申)”, 역즉(亦卽) “숙신(肅愼)” 전음(轉音), 한(漢) 인부지원위(人不知原委), 수기이이지(遂岐而二之), 유지(猶之) 혹위(或爲) “직신(稷愼)”, 혹위(或爲) “식신(息愼)”, 기실(其實) 일야(一也)

라한 것으로 족(足)히 증고(證考)할만한 것이니 “주신(珠申)”이 “숙신(肅愼)”임을 알면 “소속(所屬)”의 의(義) 일반(一般)임을 알 것이오 “숙신(肅愼)”이 “조선(朝鮮)”임을 알면 “주신(珠申)”의 음(音)과 호수(互殊)됨이 없음을 알것이엇마는 역대(歷代)의 사가(史家)들은 오즉 삼기향찰(三期鄕札)의 독법(讀法)에 몰두(沒頭)하야 “居東表日出之地, 故名朝鮮”(『輿地勝覽』)이라고 하거나 “鮮, 明也, 地在東方, 朝日鮮明, 故爲朝鮮”(金鶴峯誠一朝鮮考異)이라고 하거나 안정복(安鼎福)가튼 대가(大家)로도 혹언(或言)을 인(引)하야


東方, 卽白頭山之麓, 而白頭, 從鮮卑而來, 其本則崑崙之別支也, 後漢時, 東胡部落, 起其下者, 因山名, 爲號, 鮮卑國, 是也, 箕子之世, 遼地, 太半在其, 封域, 而在鮮卑山之東, 故稱爲朝鮮.


이라한 것이 비교적 근사(比較的近似)하다 하얏슬 뿐이오 “조선(朝鮮)”의 명칭이 얼마나 오램과 이 일홈을 지을 때 우리 말로 부른 것이 먼점인가 한자(漢字)로 쓴 것이 먼점인가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또 이것이 우리말로된 것이면 고조선 언어(古朝鮮言語)의 유적(遺跡)이 발상본토(發祥本土)에 남은 것이 교진(轎眞)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그때에 잇서 더욱이 바라지도 못할 바이라. “서나벌(徐那伐)”의 고훈(古訓)이 조모간(朝暮間)일인 것을 가지고 “신라(新羅)” 국호(國號)를 “일신(日新)”, “망라(網羅)”에다가 구차(苟且)히 부치고 “고려(高麗)”는 고구려의 약(畧)이라 그 고의(古義)는 차치(且置)하기로서니 “구(句)”의 잠산(暫刪)됨을 보고는 “리(麗)”의 평성(平聲)임도 모르고 거성(去聲)인 화려(華麗)의 “여(麗)”로 대어서 “산고(山高)”, “수려(水麗)”의 강설(强說)을 시(試)하는 것이야 가소(可笑)롭지 아니하냐? 이러케들 허무(虛無)하여섯는대 만주원류(滿洲源流)를 고(考)한 이들은 “주신(珠申)”, “숙신(肅愼)”은 병구(並究)할 줄 알앗스되 “조선(朝鮮)”이 곳 “숙신(肅愼)”임은 사급(思及)하지 못하야 구구(區區)히 일방(一方)에만 한(限)하야 가지고 “숙신(肅愼)”의 고지(故地)를 찾엇나니 비록 “관경(管境)”의 의(義)를 정해(正解)하지 아니함이 아니나 조선(朝鮮)의 일통(一統)의 회활(恢濶)함으로조차 이 칭호(稱號)가 생기고 이 칭호(稱號)에서 일통(一統)을 차저 볼 수 잇슴을 미처 겨를치 못한 것이다. 이제 다시 고조선내(古朝鮮內)의 각명(各名), 수칭(殊稱)을 진거(進擧)하야 그 통(統)한매 얼마나 넓엇슴을 상상(想像)케 하리라.






  덧 1) 나는 첫 댓글부터 DF에게 존대하였으나, 난데없이 '하오체'를 쓰더니 그 뒤에는 자기 딴에는 아주 '준엄한 꾸짖음'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반말을 쓴다. 예의를 잘라 쳐먹었으니 내가 예의를 차릴 이유는 없으니 이 글을 시작으로 예의 따위는 치워둔다.

  덧 2) 접기 전에, 지난번에 그냥 적었었는데, 생각해보니 견강부회의 뜻을 모르는 것 같아서 첨언. 견강부회는 본래 한대 이후 경학 연구 과정에서 산일된 경문의 해석과 보충 작업을 위해 생겨난 '나름 유구한 전통'이다. 단순히 "아닌 것을 끌어와 남을 속이는 것"이라고 치부할 내용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견강부회를 결코 긍정해서는 안되겠지만. 대충 이러한 배경이라는게 있다는걸 알고 비판이 신중하고 어쩌고 찾길.






누가 단장취의(斷章取義)하고 있는가? 外. └사부史部

초록불(이문영)의 김운회 비판의 문제 (1)

  초록불 님의『만들어진 한국사』에 나온 내용을 갖고 비판하는 듯 한데- 일단 (1)만 올라 왔으니 후속 글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우선 (1)에 대해서 몇 마디 적으려 한다.

  1. 정인보(鄭寅普)의 견강부회(牽强附會) 문제.

  DreamersFleet님이 언급하고 있는 정인보의 글은 이것이다.(한자는 국한문 병기, 띄어쓰기는 현행을 따르고 나머지는 당대의 것을 따름.)

  "숙(肅)", "식(息)",  "직(稷)"의 상근(相近)함은 용이(容易)히 알 수 잇으나 "조(朝)"는 "직(稷)"의 초성(初聲)과는 가트되 삼(三)은 다 입성자(入聲字)오 일(一)은 평성자(平聲字)라 어찌하야 호전(互轉)하느냐고 무르리라. 물론 이러케 구르는 것도 있다. 그러나 "숙(肅)"을 북음(北音)으로는 "수(須)"와 가치 읽나니 "조(朝)", "직(稷)", "식(息)"의 전역(轉譯)됨이 문제(問題)될 것 없고 "신(愼)", "선(鮮)"의 전(轉)은 더욱이 항례(恒例)라. - 정인보, 古朝鮮의 大幹 (一) 五千年間朝鮮의「얼」, 동아일보 1935년 1월 25일 1면 기사.


  정인보의 논지는 기본적으로 숙신, 식신, 직신과 조선의 발음에서의 유사성을 들어 넷을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사실 위 기사가 전체적으로 그러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인용되어 있는 문단의 논지 전개 방식은 다소 치밀하지 못하고 괴이한 구석까지 있다. 위 부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숙', '식', '직'의 발음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들과 '조'는 그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혹은 어렵다고 말한다.)
  ② '숙'을 북음(北音)으로 '수'처럼 읽으므로 '조', '직', '식'의 전역에는 문제가 없다.
  ③ '신'과 '선'은 발음이 명백히 유사하니 전역의 용례가 충분하다.
 
  이미 유사성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정인보는 분명히 '직시'하고 있었다. 헌데 그 말을 뒤집기 위해 '숙'의 북음(北音)을 인용하여 숙, 식, 직, 조가 발음의 유사성에 따라 바뀌어 기재됨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될 수 없음'을 인정해 놓고 '이러이러한 것이 있으니 될수 있다.'라고 하는 꼴이다. 고조선의 외연과 연원을 확대하기 위한 견강부회가 맞다.

  물론, 논조에서 정인보는 '서로 전(轉)할 수 있느냐 물을 것이다.'라면서 '숙', '식', '직', '조'의 발음 유사성을 부정하는 이들의 통설을 소개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글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고래의 사적(史籍)에 "숙, 식, 직"으로 적혀 있는 것을 북음으로 고증하려 한 것인데, 왜 북음을 활용한 것이며, 북음이 고대의 발음과 어떻게 유사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한 이야기는 인용된 부분 뿐 아니라 전체 기사 어디에도 나오질 않는다.

  다시 말해 정인보는 '숙', '식', '직', '조' 네 글자 사이에 전음 가능성을 논증하기 위해 북음을 끌어다 쓴 격이 되는 것이다. 애초에 정인보의 원 글 인용부 뒤를 보면 그 뒤에 '숙신', '식신', '직신'과 '조선'을 전역된 사이로 파악하고 있다.(애초에 정인보는 이 글을 '숙신=식신=직신=조선'임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조선 이전에 등장하는 '식신', '숙신', '직신'과 '조선'을 연결시키고 더 나아가 '조선'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를 '관속된 토경'으로 규정지었다. 즉 고조선의 외연과 연원을 확대하려는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글을 썼다는 말이다.)

  2. 정인보는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에 '견강부회'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써선 안된다?
 

(상략) 정인보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사실상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민족사학자를 은연중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정인보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나 일반인식에 비할 때 저자가 무슨 주장을 하려는지 그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임의로 타인의 글쓴 의도까지 지레짐작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하략) - DreamersFleet 님의 글 中


  '신의 시대'였던 서양 중세도 아니고, 옛 인물이나 역사에 대한 평가는 결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될 수 없다. 정인보는 분명 일제강점기, 대한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이가 맞다. 그러나 학문을 접근하는 태도 자체까지 옳다고 보긴 어렵다. 정인보나 신채호, 박은식은 공히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도구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였다. 그러니까 독립을 위한 도구로서 역사를 연구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개인적인 일을 추진할 때에도 '목적'을 정해 놓고 있는 경우, 그 목적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간혹있다. 박은식의 경우에는 구한 말의 독립 투쟁 자체를 소개하여 투쟁 의식을 고취시킨 정도였으니 논외로 한다고 할지라도, 정인보나 신채호는 고대 한민족사의 외연과 연원을 확장하여 "이러한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강제 점령 행위는 나쁜 것이고 그렇기에 독립해야 한다."의 논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역사를 연구했던 인물이다. 때문에 그들의 사론을 보면 곳곳에 비약이 보이고 논리적으로 전후가 맞지 않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절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인물이 없듯 절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인물도 없다. 언제나 그에 대한 비판은 열려 있어야 하며, 부정적 행위가 있다거나, 부정적 뉘앙스로 소개해야 할 경우에는 당연히 그렇게 소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시대가 21세기일 필요가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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