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방명록


  생존신고를 겸하여 방명록을 갱신합니다.
  실로 오래간만의 방명록입니다. 
  마지막 방명록이 2013년이었으니 무려 6년만의 갱신입니다.
  늘 그랬듯 글은 적고, 올리는 호흡도 느려서
  이 6년만의 갱신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만.

  반갑습니다. 푸른화염입니다. :)

  여전히 역사와 전통, 문화예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집니다.
  링크 신고는 이 글에서 받겠습니다.
  
  유사역사학, 유사과학, 극단주의는 배격합니다. 건강한 토론은 늘 환영합니다. 
  다만 토론을 빙자한 '싸가지'는 환영하지 않습니다.(반말, 욕설 등등)
  오픈된 '개인공간'의 주인으로서 위 사항을 어기시는 분은 가차없는 차단으로 대응합니다.
  아무리 오프된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여긴 저의 '개인공간'이니까요.
  옛날에는 어기시면 똑같이 대해드렸습니다만 지금은 그럴만한 여력도 의지도 없습니다.
  고로 적발되면 바로 차단임을 명심해 주십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년 방명록


  1. 2013년 방명록입니다. 포스트와 무관한 덧글, 링크 신고는 이 곳을 통해주셨으면 합니다.

  2. 죽을만큼 힘들었던 해를 또 보내고, 또 그만큼 힘들 해를 맞이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복은 오겠지.'라는 일말의 희망도 있다는 것을 전하며 여러분들께도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시험을 앞두고, 인사는 카톡과 페북을 통해서 하다보니 블로그는 그냥 가만히 방치할 뻔 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조금 더 움직일 수 있으려는지……. 여튼, 이하는 작년 방명록과 동일한 내용을 넣습니다.

  3.  본 블로그는 역사(歷史)와 전통 문화예술에 관련된 포스팅이 주로 이루어집니다. 역사 포스팅에 대한 일종의 도구로서 인문 철학 분야의 포스팅도 가끔 있을 수 있지만 지도 편달이 필요합니다.

  4. 본 블로그는 토론을 장려하지만, 속칭 '쿨게이' 성향의 논객들이라거나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출입을 삼가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피아간에 정신건강엔 안좋으니까요. 배설은 자기 블로그에서. 덧붙여서 토론과 논쟁을 장려한다고 해서 '반말 찍찍 싸대는' 것까지 장려하진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좀 못되어서 잘라내는 짓은 못하고, 대신 똑같이 응대합니다. 다만,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되면 덧글을 전면 삭제하고 해당 방문자를 차단하도록 하겠습니다.

  5. 메타블로그 지향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오픈된 개인 공간'으로서 제 블로그의 모든 관리 권한은 저의 자의에 있음을 다시 밝힙니다.

모 역사 카페에서의 논쟁을 보다가 문득 든 의문 └사부史部


  호흡이 긴 글을 자 안쓰다보니 이젠 영 글 쓰기가 쉽지 않다. 일단, 그래도 좀 뭔가 읽으면 감은 살아나니 그것 때문에라도 요즘엔 읽을만한 역사관련 글들을 좀 읽는 편인데 최근에 모 카페에서 논쟁이 일어난 글들을 보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뭐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고-

  모씨가 촉한(蜀漢)이 익주(益州)의 행정체제를 전부, 후부, 좌부, 우부, 중부의 5부로 나누었다-는 논지의 주장을 했고, 그 근거로 'O부독', '독O부'(O=전, 후, 좌, 우, 중)로 검색되는 정사『삼국지』내의 기사와『삼국회요三國會要』의 몇 글자를 들고 왔다.

  해석이 맞고 안맞고는 일단 차치해 두고서라도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든 것은 '전, 후, 좌, 우'라는 방향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를 면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위치가 바뀔 수 있다-고 보는데(때문에 4방장군 가운데 '좌장군'이 상대적으로 상위 권한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일테고), 이 지극히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방향성'이 행정구역명으로 사용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물론, 백제의 수도 5부제에서 '전부와 후부'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좌, 우부가 같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부를 중심으로 전/후부 외에 상부, 하부가 등장하는 것이니 분명히 다른 경우일 것으로 생각된단 말이지. 백제의 5부제는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어서 좀 찾아 볼 필요야 있겠는데, 이래저래 행정구역명으로 '전후좌우'가 사용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가는 1人.

130301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람 후기 └사부史部


  들어가기 전 세글자 요약 : 엉터리.

  오늘, 3.1절을 기념해서 진성당거사님의 주최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답사가 있었습니다. 날이 추워서 본래 예정되어 있었던 후속 답사인 창덕궁-창경궁 일원 답사를 하지 못한 것이 퍽 아쉽습니다. 여하간- 사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이미 박물관 취지나 컨셉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익히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컨셉 면에서 그렇게 놀랄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말이야 '멘붕의 답사다!'하고 다녔지만, 실질적으로 저 자신은 그 컨셉 때문에 멘불을 겪진 않은 것 같아요. 다른 무엇보다 일베충과 골수 맑시스트의 성향을 함께 갖고 있는 친구가 주변에 있는 터라 그런 컨셉 따위 그저 넘길 수 있었지요.(야)

  그러나, 그 내용과 전시의 내실에 대해서 알게되고는 엄청난 멘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역사'라는 것이 일제강점기 이전에만 있었다-고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 요즘엔 좀 더 연대를 늦춰서 해방 이전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건물에 대한 설명은 없더군요. 그 자리가 본래 정부정사자리로 필리핀이 지어준 건물이라는 것 정도는 앞에 표지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데요. 사실 관련해서 작년 초가을 경에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 소장이 주최했던 답사도 다녀 왔었지만, 상당히 이력이 복잡해서 지금도 퍽 기억이 쉽지 않은데요- 이래저래 그런게 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간, 이런 감상을 느낄 새도 없이 들어간 전시실은 처음 사진자료가 곁들여진 연표부터 가열찬 디스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캡션이 죄다 개판이었지요. 그 뿐인가요? 전시실 첫번째 장을 보는 동안 한 대여섯개의 장은 보았겠다- 싶을 정도로 아스트랄한 오류의 향연이었습니다. 가령 1887년(... 이 맞았던가요?)의 책들이라고 소개해 놓고는 그때 책은 딱 1권 가져다 놓는 센스라거나 그냥 A4용지에 뜬게 분명한 조악한 복사본들, 사진들은 인용과 복사를 여러번 거친 것을 확대해서 JPG확대시의 계단식 윤곽선이 그대로 보이는 참상에 당장 같은 사진인데 캡션이 달라진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요.

  그 뿐인가요? 만평자료를 인용한 입체형 패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잘라먹고 있지 않으면, 뻔히 보이는 '조견일로전사지도' 제목을 두고서도 '러일전쟁상황도'라고 써 놓은 경우, 사진 자체도 해독을 못하고-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뮤지엄샵이 있는데 여긴 그냥 국중박과 똑같다고...

  다른 무엇보다 무려 '박물관'인데 학예사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때문에 기증된 자료의 전시는 '기증자의 기억에 따라 배치 및 설명'되고 있었다는 거죠. 기증자가 전부 역사학자도 아니고, 사실관계에 있어서의 오류야 누구던 있을 수 있는데 그걸 비판해 줄 학예사가 없는 박물관이라는게 참…. 물론, 현대사는 이제 연구자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는 입장이니 오죽하겠습니까마는, 우리 학계에는 이미 문헌사만 하는 이들이 판을 치는 형국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래저래 뒷목 잡겠더군요.

  이후에는 밥자리와 찻자리를 겸한 난상토론의 장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난상토론까지 참여했다가 요 며칠간의 논스톱 일정으로 인해서 도저히 못버티고 자리를 먼저 떴습니다. 이제사 몸이 추스러지네요.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적은 겁니다.

  오늘 처음 뵈었던 월광토끼 님, 부여님
  오래간만에 존안을 뵐 수 있었던 야스페르츠 님, hyjoon 님, 누군가의 친구 님
  조금 늦게 합류하시어 다행히 멘붕의 장을 겪지 않으신 행인1 님
  마지막으로 모임의 주최차셨던 진성당거사 님까지- 모두 만나뵈어서 반가웠고
  이런 저런 얘기를 통해서 또한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엔 익선관이 없는가?(부제 : 이런 사기를 치다니) └사부史部



  이런 뉴스가 떴다. 첫번째 줄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한국에는 임금이나 황제가 쓰던 익선관이 없습니다.' 정말인가? 박물관에서 언뜻 본것도 같은데? 아닌가? 그럼 그것들은 다 일본이 가져간건가? 저런 나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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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렇게 얘기가 전개된다면 헛소리.

  생활문화재는 쉽게 전승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려 받아 쓰는 경우도 있고, 상례(喪禮) 혹은 무속적인 이유로 망자의 물건을 태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생활품이라는 것이 보존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남기도 어려울 밖에. 때문에 먼 시기의 생활문화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가구나 소품류는 남아 있을 뿐이지 복식 류는 더더욱.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나라에 그런 것들이 아주 안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직접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의복류와 염습의(殮襲衣)로 사용된 매장 복식, 사찰에 기증된 복장(伏藏) 복식 등 수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조선 초나 고려시대의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17세기 전후의 유물들이나 18세기, 19세기의 유물 등 다양한 것들이 남아 있다. 익선관? 당연히 있다.

<사진 1, 2> 전(傳) 고종 익선관

  전(傳) 고종 익선관이다.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 제44호로 지정된 유물이다. 당장 세종대학교 박물관 홈페이지만 둘러보아도 (박물관 홈페이지는 상당히 빈약하지만) 소장유물 가운데 익선관 하나가 올라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 물건이다.(클릭 : 사진 상태는 썩 좋지 못하다.) 사진의 출처가 되는『문화재대관 - 중요민속자료 ② 복식·자수편』에는 더불어 이런 설명도 있다.

  익선관은 본 유물 외에도 창덕궁에 3점의 익선관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북청색, 흑색, 자색 각 1점씩이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상태가 양호한 영왕의 자적색 익선관도 함께 소장되어 있는데 고종의 익선관과 흡사한 형태이다.

<사진 2> 익선관

  현재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옛 창덕궁 보관 익선관 3점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현재 찾을 수가 없고, 대신 다른 도록에 실린 사진을 가져왔다.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에 소장되었다는 익선관이다. 전 고종 익선관보다 상태가 조금 안좋아 보이지만, 그건 도록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넘어가고, 전체적인 형태나 색감 등은 비슷해 보인다.

<사진 4> 영친왕 익선관

  역시 위의 익선관들과 전체적인 형태가 유사하다. 특히 오륜대박물관 소장의 물건과 아주 유사하게 생겼는데, 면사의 상태에 다소 차이가 있다. 이것은 지난 2009년 지정된 영친왕의 익선관이다. 영친왕이 누구인가? 주장하는 바대로 따지자면 황사손을 자임하는 이원 씨의 할아버지가 된다. 버젓이 (의붓이긴 하지만) 자기 할아버지의 유물까지 존재하는 익선관이 한국에 없다니? 이걸 포함, 저 위의 오륜대박물관 소장 익선관과 고궁박물관소장 익선관 3기를 개별로 처리하면 무려 6개의 익선관 유물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걸 제하고도 2~3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익선관이 없어? 원 어이가 없어서.

  하긴, 이들의 정신나간 헛소리가 이 뿐이 아니기는 하다.

  황사손을 자칭하는 이원 씨는 어느 매체 인터뷰에서 '살아 있는 궁이 되려면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낙선재에서 외국인과 학생들을 만나 얘기하면 얼마나 생생하겠나?' 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생생한 해설을 해 줄테니까 내가 낙선재에서 살게끔 하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소리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낙선재 활용방안을 문화재청과 이야기 했다는 얘기가 바로 뒤에 나오는 지경이다. 아무리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생활공간은, 주거 공간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는 곳이므로 개방할 수가 없다. 왜 순종비 윤씨가, 이방자가, 덕혜옹주가 살았던 시절의 낙선재는 개방되지 못했는가? 당연하다. 그들의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황사손이 산다고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은가? 천만에.

  영국의 버킹엄 궁전은 영국 군주의 공식 거처로 사용되지만 7~8월에는 일반인 입장을 허가한다. 그러나 7~8월이면 극히 짧은 기간이며 그 개방 범위는 현재 알려진 것이 없다.(제현들 께서는 이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문화재에 직접 기거하면서 생생한 역사의 전달-이라니……. 차라리 그러한 의도라면 '감독하게 건물 내부를 직접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와 '문화재 해설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장치를 생각하는게 이성적이다.(무려 이런 사람이 PD출신이다.) '생생한 역사의 설명을 위해 내가 사적 유용하겠다.'니- 이건 말인지 막걸린지.

  아니 애초에 영국까지 갈 것도 없다. 삼청동~안국동 등 북촌 일대에 있는 가옥 가운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 몇개 있다. 그 가운데 안국동 윤보선가(정독도서관 가는 길에 있는 바로 그것)에는 아직도 윤보선 대통령의 유족들이 산다고 알고 있다.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는다. 특별 개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는데 '특별 개방'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의 제정신 아닌 발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환구단 터에 건물이 들어섰으니 복원을 못하고 환구단을 서울광장에 세우려고 했다는 소리. 애초에 '원구단'을 '환구단'이라고 우기는 것은 그렇다 치자. 아니 전제권력의 산물인 대한제국의 환구단을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시청 광장'에 재건한다는게 있을 법한 소리인가? 이걸 기득권이 반대한다고? 천만에, 찬성하는 측을 오히려 정신병자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문화재 환수. 소송을 걸겠다 어쩐다- 애초에 유출 문화재의 유출 경로가 확실한게 몇이나 될 것 같은가? 물론 기사 속 투구나 익선관들은 오구라컬렉션의 일부로 보고 있고, 이 컬렉션이 공식적 경로(매매라거나 선물이라거나)가 아닌 비공식적 경로로 유출 된것은 분명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문화재 실태가 어떤가? 있는 문화재도 제대로 관리 못하고 있는 실정에다가 - 10여년 째 '수장고 소장 목록 정리 시작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이라거나 - 유물 관리는 개판 오분전 - 심지어 고종 어진 중 하나는 밑이 울었고, 경기전 제향 때 찢어먹은 태조 어진은 인사동에서 싼맛에 땜질했다. 하긴, 생각해보니 이 경기전 태조 어진은 대동종약원이 한 짓이구나. 에헤라디야. 에라이... - , 그런데 여기로 들여오자고? '민족적 자존심'을 위해서? 천만에. 민족? 그래 중요하지. 그러나 '문화재'는 문화재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존심의 도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유출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는 어찌 되었던 '매매'와 '증여'라는 방식을 통해 나온 것도 있다. 이 경우는 법적으로 (상당히 분통터지지만) 문제가 거의 없다.(모르지, 난 법학도가 아니라서. 꼬투리 잡으면 나올지도.) 이걸 소송을 하겠다고?

  싫다싫다 하니 이젠 별 기도 안 차는 소리들을 하고 있다. 황사손 이하 대한황실문화원은 제발 정신들 차려라. "아, 우리 황실이 무능력했다. 그러니까 내가 아픈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라고? "고종 황제는 이러한 개혁으로 우리나라를 구하려 하였으나 외세의 핍박으로 실패했다."는 식으로 설명하시는 분들이 누구시더라? 가당찮은 헛소리 말고 제발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성을 좀 하는 것이 어떤가?



2012년 방명록


  1. 2012년 방명록입니다. 안부라거나 링크 신고는 이 글을 통해 덧글로 받겠습니다.

  2. 작년 한해는 여러모로 시끌시끌 했었고, 그것이 올해라고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절망감이 먼저 들긴 하지만, 그래도 작년 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희망 정도는 가질 수 있을리라 봅니다. 이 블로그에 오시는 분, 또 오시지 않는 분 모두 작년보다는 좀 더 나은 한해를, 또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보내실 수 있길 바랍니다.

  3. 본 블로그는 역사(歷史)와 전통 문화예술에 관련된 포스팅이 주로 이루어집니다. 역사 포스팅에 대한 일종의 도구로서 인문 철학 분야의 포스팅도 가끔 있을 수 있지만 지도 편달이 필요합니다.

  4. 본 블로그는 토론을 장려하지만, 속칭 '쿨게이' 성향의 논객들이라거나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출입을 삼가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피아간에 정신건강엔 안좋으니까요. 배설은 자기 블로그에서. 덧붙여서 토론과 논쟁을 장려한다고 해서 '반말 찍찍 싸대는' 것까지 장려하진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좀 못되어서 잘라내는 짓은 못하고, 대신 똑같이 응대합니다. 다만,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되면 덧글을 전면 삭제하고 해당 방문자를 차단하도록 하겠습니다.

  5. 메타블로그 지향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오픈된 개인 공간'으로서 제 블로그의 모든 관리 권한은 저의 자의에 있음을 다시 밝힙니다.

역사와 문화를 '만족'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라. └사부史部

  역사와 문화를 '만족'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우리는 '극우'가 된다. 결국 이 '만족'의 관점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탈피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학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된다는 느낌이 든다. 문제는 그 빠져나가는 과정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일 것이다. 타인이 내 '만족의 영역'을 건드릴 때, 우리는 누구나 반발하기 때문이다. 논의의 정당성이고 뭐고- 그런거 없이 그저 "왜 내 만족을 건드리냐"에서 시작된 아주 저열한 인신공격만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그것은 한때 환단고기에 빠져있던 나도 그러하였고 지금 유사역사학-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그러하다. 

  덕분에 스스로 깨닫기까지 조언자는 오직 '이러하다더라.'를 전달하는 역할 외엔 무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별 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말은 이것이다. 당신네들의 논리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주체를, 혹은 '고구려'라는 주체를, '고조선'이라는 주체를, '단군'이라는 주체를- 일본과 일본의 신들로 채워넣어봐라. 더 나아가 당신들의 논의에서 '한민족'이라는 단어를 '게르만'으로 바꿔봐라. 얼마나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 나치 시절의 독일과 소름끼치도록 유사한 소리들이 재탕되는지. 

  '사람의 기록'이 바로 역사이고 '사람의 흔적'이 바로 문화다. 그 기록과 흔적에는 어떠한 원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것은 오직 '삶'의 총체일 뿐이지 '어디서부터 비롯된, 어디에 원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부모에게 나왔다고 해서 내 삶이, 내 역사가 '부모'의 역사가 되지 않는 것처럼.

  (언젠가 나의 이 논의는 더욱 심화 될 것이다. 역사학이라기 보다는 역사 철학-에 가까운 얘기라고 생각하지만, 이 논의를 끝내지 않고는 우리는 앞으로도 수십년, '민족 자긍심'과 '사실'이라는 지극히 허상적인 주제를 두고 싸움질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사'와 관련된 어처구니 없는 소리들- └사부史部


  (상당히 오래간만의 포스트입니다. 공부하다 손에 안잡히기도 하고, 문득 몇가지의 어이없는 이야기들을 들었던 것들이 생각나서 단편적으로나마 글을 적어 둡니다.)

  1. 환단고기에 대해서 그래도 연구는 해봐야 하지 않느냐?

  당장 '서지적'으로도 성립이 안되고 '내용적'으로도 말이 안되는 내용 천지인데 그걸 어째서 '연구 대상', 혹은 '근거'로 삼을 수 있느냐 반문해도 눈감고 귀를 닫는다. 뭐가 틀렸는지 얘기를 해 주면 "난 어려운 소리 하는거 잘 모르겠다.는 답이 나와. 그리고 그러면서 나더러 덧붙이는 말, "너는 너무 전문적인걸 요구하는 버릇이 있어."

  2. (단재가) 그래도 식민사학자 이병도보다는 낫지 않느냐? + 이병도도 죽기 전에 단군 인정했다며.

  단재에 대해서 '사료 오독'과 '작위적 해석'의 책임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학설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는것은 문제-라고 했더니, 거기다 대고 저 소리. 대체 이게 언제적에 파쇄된 떡밥인데 아직도 저 소리를 하는가- 싶을 정도. 간단하게 이병도의 연구 이력을 설명해 줘도 이건 "이병도가 그랬나?" 에서 끝. 알아볼 생각은 안한다. 형만 아니면 죽였ㄷ...

  3. 우리는 중국에서 전해 받은 것만 있고 우리가 전파한건 없다-고들 한다.

  그게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인데 뭘 어쩌라는거지? 아니 '근거'만 있으면 충분히 그런 학설 세울 수 있지. 그런데 그건 그냥 '바람'의 표현일 뿐 아닌가? 그리고 막말로- '남의 문화를 받아 들이는 것'이 왜 나쁜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젠장. 젠장. 젠장!

  4. 난 네말도 안믿고 그사람들(=이덕일 부류) 말도 안믿는다.

  이덕일의 오독과 오류를 조목조목 짚어줘도 한다는 말이 저거다. 이유는 "양쪽 다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중간에서 맞는 말만 추리겠다-"는 뜻. 그럼 당신이 사료 한줄이라도 읽던지 연구 한줄이라도 하던지. 그러지도 않을 거면서 '편향' 어쩌고 저쩌고. ㄱ-

  ... 진짜 이러다가 내 차원에서의 환단고기 + 재야사서 비판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양반 가져다 주러. ㄱ-

  사부 카테고리-지만 이건 내가 논증한 내용들이 아니므로 밸리 발행은 안함.

2011년 방명록


  1. 얼마 찾아오시지도 않는 블로그라 방명록을 달아놓기도 뭐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얼음집을 폐쇄할 생각은 없다지요. ㅎㅎㅎ 얼음집도 얼음집만의 색을 부여해서 운영해 볼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요. :)

  2. 경인년이 힘드셨던 분들은 신묘년은 힘 안들게 보내시고, 경인년에 힘 안드셨던 분들은 신묘년엔 더 힘 안들이고 보내시길 빕니다.

  3. 네이버 블로그는 2010년 방명록에 주소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또 거기로. ^^

  4. 쿨게이 서구빠,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출입 금지할 것을 권합니다. 보시면 정신건강에 안좋으실테고 저랑 붙으시는 것도 그렇게 정신건강엔 안좋으실 거에요. ^^

  5. 4로 끝내기 싫습니다.(응?&도주)

2011년 내 이글루 결산

2011 내 이글루 결산

1년동안 작성한 푸른화염님의 결산내역입니다. 이글루에 포스팅하여 공유해보세요.
본문이 500px 이하인 스킨은 지원하지 않아 포스트가 잘려보일 수 있습니다.
결산기간 : 2011년 12월 26일~ 201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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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1년동안 작성한 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363장 분량이며, 원고 두께는 약 3cm 입니다.
1년 동안의 글을 문고판 시리즈로 낸다면 2권까지 낼 수 있겠네요. 푸른화염님은 올 한해 이글루스에서 18,145번째로 게시물을 가장 많이 작성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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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글루결산

  올해부터는 연말마다 이 행동을 한번 해 볼까-하는데……. 생각해보니 이글루스 내에도 지각변동이 한 차례 있던 적이 있었으므로 이게 의미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활동 TOP 5 만큼은 지우고 싶더군요. 사람 성질 돋구는 것도 아니고…….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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