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곡 기책에 대한 소고 └사부史部

 

자오곡 기책에 대한 소고


목차(目次)


0. 서두 - 기책이란 무엇인가?

1. 자오곡 기책이란 무엇인가?

1-1 위연의 자오곡 기책을 통해 밝히는 자오곡 기책의 요체

1-2. 위연 건의의 모순 : 한신의 관중 공격과 위연의 자오곡 기책

2. 자오곡 기책 왜 불가능한가?

 2-1. 지형에 의한 행군의 난점.

 2-2. 위(魏)의 대응.

 2-3. 떨어지는 완성도

3. 결어 - 자오곡 기책, 실현 불가능한 계책


0. 서두(書頭) - 기책이란 무엇인가?


기책(奇策),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갑자기 가해지는 채찍질이란 의미이며 사전적 의미로는  ‘남의 의표를 찌르는 기발한 계책. (비슷한말)기계(奇計).’이다. 기책은 남의 의표를 찌르는 기발한 계책이다. 결국 기책은 계책의 한 종류로 그 목적이 남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므로 의표를 찌르지 못하거나 게책을 당하는 상대가 이를 미리 간파하여 대비한다면 기책의 생명은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실패 할 경우, 처음부터 상대를 다시 상대해야 하는 위험이 있다. 즉 기책은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략이어야 하는 셈이다. 수많은 병략이 등장하는 삼국지에도 기책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것이 서기 228년, 촉장 위연이 촉 승상 제갈량에게 건의한 자오곡 기습 계책이다. 그런데 이 자오곡 기책은 아쉽게도 성공할 수 있는 기책에 속하지 못한다. 우선적으로 위연의 발언에는 몇 가지 모순이 들어가 있다. 또한 그것을 배제하고서라도 지형이나 위의 상황적 측면에서도 위연의 기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1. 자오곡 기책이란 무엇인가?


1-1 위연의 자오곡 기책을 통해 밝히는 자오곡 기책의 요체


[위연은 제갈량을 수행해 출진할 때마다 병력 1만을 청하고 제갈량과 다른 길로 진격하여 동관에서 만나 한신의 고사를 따르고자 하였으나, 제갈량이 제지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위연은 제갈량을 늘 겁쟁이라 말하며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1) 魏略 : 하후무가 안서장군으로 임명되어 장안 수비를 맡았다.  제갈양이 남정에서 부하들과 전략을 논의할 때, 위연은 이렇게 말했다. 


"듣건대 하후무는 젊고, 조조의 사위이며 겁장이이고 지모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저에게 정예 5천명과 휴대할 식량 5천 석을 주신다면, 곧장 포중을 뚫고 나가 진령산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자오곡에 당도하여 북쪽으로 간다면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장안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후무는 저 위연이 갑자기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틀림없이 배를 타고 도주할 것입니다.  장안성 안에는 단지 어사와 경조태수만이 있을 뿐이므로, 횡문에 있는 식량 저장 창고와 흩어지는 백성들의 곡물로 군사의 식량은 충분할 것입니다.  위나라가 병력을 모으는 데는 20일은 걸릴 것이므로 공이 사곡을 뚫고 나오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한 번의 행동으로 함양 서쪽 지역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이 계책이 위험하여 안전하게 평평한 도로로 나아가 농우를 평정하게 하는 것 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십전필극하면서도 후환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위연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 삼국지 촉서 위연전


위 내용이 위연의 자오곡 기책의 내용이다. 상기 기록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자오곡 기책의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5천 병마를 이끌고 포중, 진령산을 따라 자오곡에 당도하여 북쪽으로 진격, 장안 함락

② 제갈량은 사곡을 뚫고 나와 위연과 동관에서 합류


즉, 자오곡 기책의 끝은 제갈량과 동관에서 합류하는 것까지로 보아야 하며, 그 요체는 자오곡을 통해 장안을 합락하고, 제갈량과 동관에서 합류 하는 것인 셈이다. 흔히 비슷한 예로 인용되는 주환의 협석, 괘거 차단 계책과는 달리 합락 이후의 계획이 비교적 상세한 것으로 봐서, 단순히 장안의 ‘함락’만으로 한정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위연은 이러한 정당성의 근거로 한신의 선례를 들었다. 그렇다면, 먼저 한신의 선례와 비교해 보자.


1-2. 위연 건의의 모순 : 한신의 관중 공격과 위연의 자오곡 기책


위연이 자오곡 기책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삼은 한신의 선례, 과연 그 선례와 위연의 자오곡 기책이 비슷한 성향일까? 미안하지만 아니다. 위연의 자오곡 기책과 한신의 관중 공격에서 비슷한 것은 오로지 하나, 관중 지역을 공격한다는 것뿐이었다.


[8월, 한왕은 전 군사를 동원해서 동쪽 진창으로 진출하여 삼진을 평정했다.] - 사기 회음후 열전


[8월, 한왕은 한신의 계략을 받아들여서 구도(구도는 통과하는 대로 불태워버렸던 촉의 잔도가 지름길인데 비해 봉현을 지나서 동쪽으로 나오는 우회로를 말한다.)로 우회하여 군사를 돌려서 옹왕 장한을 급습했다.

장한은 한나라 군사를 진창에서 맞아 싸웠으나 패퇴하여 호치에서 일단 포진하고 한나라 군사의 공격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패하고 폐구로 도망쳤다.] - 사기 고조 본기


우선, 장안의 상황 자체가 달랐다. 위나라 때의 장안은 이미 분열 지역이 아니라 통합 광역 행정 구역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지역이 광역이라 우부풍이니 좌풍익이니 경조윤을 둔 것인데, 그것일 뿐, 장안은 통합 지역이었다. 그러나 한신이 평정할 당시, 장안 지역은 삼진이라 하여 항우에게 사랑받기 위한 왕 세 사람이 경쟁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분열지역이었다. 따라서 방어하는 양식 자체가 달라지게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如韓信故事(여한신고사 : 한신의 선례와 같이)라는 구절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한신의 선례와 위연의 자오곡 기책이 같은 성향을 띄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하지만 사기의 기록을 볼 때, 한신은 자오곡이 아닌 진창도를 통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위연이 한중의 고사를 말 한 것은 한신이 기습한 것처럼 나도 적을 기습하겠다는 기습책을 요약한 말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실상 한신의 선례와 위연의 자오곡 기책은 비슷한 성향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3. 자오곡 기책 왜 불가능한가?


3-1. 지형에 의한 행군의 난점.


한중에서 한수를 따라 서향하여 기산으로 나가는 길

기곡으로 나아가 진창으로 나가는 고도(=진창도)

사곡에서 오장원, 미성으로 나아가는 포사도(=야곡도)

낙곡에서 무공으로 나아가는 낙곡도(=당락도)

자오곡을 거쳐 장안으로 나아가는 자오도


당시 촉의 북벌군이 택할 수 있는 북벌 루트는 상기한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이중 제갈량은 기산이나 진창을 택하여 나가려고 하였다. 위연이 여기서 택한 길은 포사도와 자오도. 글이 위연의 자오곡 기책에 대하여 논하는 글이니 만큼, 그가 택한 포사도와 자오도의 지형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자오곡은 협곡 험로 지대였다. 따라서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기에는 어려운 지형이다. 또한 포사도는 제갈량이 이끄는 본군의 이동로로 지목한 것을 참고할 때, 비교적 지형이 평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오곡이 장안으로 이어져 있는데 반해, 포사도는 장안 동쪽 동관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진령 산맥은 평균 해발고도 2000m이상의 고지대에 속한다. 또한 촉군의 발원지인 익주나 한중 역시고원 지대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군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신이 진령산을 5일만에 주파한 기록도 있으니 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 다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진령산맥은 높이 뿐 아니라 그 규모가 큰 산맥에 속한다. 한신이 택한 진창도를 통해 장안으로 가는 것은 자오곡과 비교해 보았을 때 우회로에 속한다. 따라서 진령산을 넘는 위치 또한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직선거리 상으로 훨씬 돌아가게 되는 것이며, 군사의 피로를 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 한신은 진령산맥의 서쪽 지역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위연은 그와 달리 중앙 고지대를 돌파했을 것으로 보이며(직선거리상 가장 가깝다.) 그 경우, 고도 3666m에 달하는 태백산 지역을 지나야 한다. 거기다가 정황상 위연의 부대가 5천석의 군량을 지고 가는 상황이다. 5천 병마에 5천 석이고, 치중부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감안할 때(단, 진수의 기록처럼 1만 병마를 내어 달라고 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대규모 병력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속도가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험한 협곡지대를 지나는 5천의 병사가 치중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행군에 난점이 없다고 하기 어렵다. 쌀 한 석의 무게는 27kg에 이른다. 혹자는 이를 두고 움직이는 것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자오곡이라는 험로를 돌파해야하는 전략의 특성상, 위연이 말한 정예의 대 부분은 보병일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군복 변천사를 보면, 이미 진시황릉의 병마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갑’이라는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었고, 이것은 수, 당 시대를 거치면서 양당갑, 통수개, 보인갑, 명광개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진나라의 개갑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당시 갑옷의 양식이  판갑1)에서 철편을 이어서 만든 갑옷의 형태로 발전한 상태라는 점이다. 이러한 갑옷은 철편으로 제작되므로, 가벼운 내갑의에 속하는 피갑보다 무거운데, 적어도 10~20kg 정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2) 설령 이것이 철갑의 형태가 아닌 피갑이라고 해도 방어용으로 쓰이는 피갑 중, 전신 방어용 피갑은 20kg을 웃도는 무게다. 갑옷의 무게 중 흉갑 부위가 그 반 정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는 피갑도 마찬가지가 된다. 우선적으로 흉부를 가리는 피갑의 경우, 그 두께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3) 이렇게 추산할 때, 병사들은 적어도 10kg이상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또한 중국의 병사들 대 부분이 창을 사용하며, 더군다나 위연의 병력은 자오곡을 급습하는 병사로 투사무기를 비롯하여, 창과 같은 장거리 백병전 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통 창의 무게가 5kg정도. 따라서 위연과 병사들은 적어도 50kg 이상의 짐을 운반해야 한다.


진령산맥은 고산지대이며, 자오곡은 곡(谷)이라는 지명과, 후기 할 내용이지만, 매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험준한 협곡지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위연이 택한 자오도의 길이 이동하기 어려운 험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험로를 거쳐서 병사들이 행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4) 이 길을 지날 경우, 위연의 병사들이 피로를 입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이러한 상태로 거성인 장안을 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우선 지형적 측면에서부터 위연의 계책은 기각대상인 것이다.


 3-2. 위(魏)의 대응.


위연이 장안으로 진격할 경우, 예상되는 위국의 대응을 당시 위국의 상황을 토대로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ㄱ. 장안 - 하후무와 조엄


당시 장안 방어의 총 책임자는 안서장군 지절 하후무였다. 하후무는 조비의 총애를 바탕으로 안서장군에 임명되면서 하후연이 하던 장안 방어의 업무를 살피게 된다. 이 하후무와 함께 장안을 지키는 것은 경조윤과 어사 등을 들 수 있다. 많은 이들의 추측대로 이 시점에 하후무가 소환되었다면, 마땅히 장안의 최고 행정 책임자인 경조윤이 병마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하후무가 소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위략에는 정작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 인지 알 수 없다. 만일 하후무가 소환된 시점이 이보다 전으로 이미 그때 복귀 한 상태였다면, 하후무가 도망가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야 하며, 도망갔다거나, 소환되었다고 해도 장안의 방어 총책임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안이 완전히 텅 비어버리는 사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끌게 될 장안의 병력은 얼마나 될까? [삼국지 고증학]이나 여타 사료에 의하면, 당시 제갈량의 북벌에 위가 매우 당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선에 꽤 많은 인력을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보기에 내륙은 비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과 상대한 병력 대 부분이 위나라 북서부의 옹, 양 지역의 병마라는 점과, 기본 방어 인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장안이 비어 있다고 해도, 최소 5천 정도의 병력을 갖추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장안은 거성이며, 병략 논리상 농성의 경우 같은 수의 군사라도 수비측이 더 유리하다. 우선 농성전에 자주 사용하는 투사 병기의 경우 물리학적 원리에 따라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쏘는 편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며, 화공을 쓰기 또한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안에 도달한 위연 군대가 순조롭게 장안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ㄴ. 비요, 조진, 곽회


장안을 함락한 뒤에 걱정 되는 것은 장안 이서의 위나라 본토 세력이다. 당시 낙양에는 이미 옹양이주제군사 가절 조진이 진수해 있었고, 독자적 병력 행위를 할 수 있는 후장군 비요 또한 낙양 북쪽에 진수하고 있었다. 조예가 장안에서 하후무를 소환한 시점을 그 시점으로 본다면, 이미 하후무를 대체할 수단을 마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진의 병력은 10만 내외로 추산되는데, 10만이 넘는 조진의 병력을 장안성을 이용해서 겨우 5천의 병사가 막아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위연이 기대하는 것은 동관의 제갈량이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제갈량은 포사도를 통해 나올 경우, 먼저 동관 지역을 지나야 위연과 합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낙양을 출발, 동관을 공격할 조진의 군사와 만날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 후장군 비요의 군사가 더 해진다면, 제갈량은 병력 상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제갈량이 빨리 포사도를 뚫고 동관을 선점하여 조진의 군대를 유리한 지형에서 맞서서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 그 사이에 긴밀히 위연과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커다란 난점이 또 숨어 있다. 이 난점으로 인해, 제갈량의 진군 속도가 감소 될 수 있고, 또한 위연의 후방도 안정적일 수 없다. 바로 곽회가 그 난점이다.


[옹주자사를 겸임하도록 임명했다. 안정의 강족 대사 벽제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곽회가 토벌하여 투항하도록 했다. 매번 강족과 오랑캐가 투항해 오면 곽회는 항상 먼저 사람을 보내 그들의 친척관계 남여의 많고 적음을 탐문하도록 했다. 회견할 때, 한두가지 일로부터 그들의 사정을 하나하나 이해할수 있었고, 심문을 매우 조밀하게 하였으므로, 모두 그를 신명이라고 칭했다. 태화 2년(228)촉나라 재상 제갈양이 기산에서 나와 장군 마속을 가정까지 파견하고, 고상은 열유성에 주둔하도록 했다. 장합이 마속을 공격하였고, 곽회가 고상의 진영을 공격하여 모두 격파시켰다. 또 농서의 유명한 강족 사람당제를 포한에서 격파시켰으므로 건위장군의 직위를 더해주었다.] - 삼국지 정사 곽회전


곽회의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직접 병마를 움직이는 것과, 다른 세력을 준동시키는 것이다. 곽회 이전에 위나라에서 옹, 양 지역의 이민족에게 두려움의 대상은 장기였다. 장기 사후, 옹주자사 곽회가 그 위명을 이어간다. 즉, 곽회가 가진 이민족에 대한 영향력은 매우 강했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를 이용, 곽회는 위연의 병마를 얼마든지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또 제갈량이 택한 기산 진출로의 요충지인 가정과 근교 열류성은 위연이 말한 포사도와 인접한 위치였다. 이때 곽회가 열류성을 친 것은 곽회가 당시 남하해 있었다는 것이다. 공명이 포사도로 진입할 경우, 곽회가 포사도로 남하하여 제갈량을 막아 선다면, 제갈량의 진군 속도는 매우 느려질 수밖에 없다.


곽회는 이후 강유의 북벌을 막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해 내는 위나라 중~후기의 명장이다. 제갈량도 병마에 대한 일정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으나, 위나라의 영토에서 아무리 넓고 평탄해도 평야가 아닌 포사도5)를 지나며 곽회의 군대를 상대하기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 뿐 아니라, 장합이 가정을 직접 친 것은 장합 역시 명령만 있다면 군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제갈량이 포사도를 뚫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며, 설령 뚫었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가 극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렇게 된다면, 위연의 병마와 합류한다고 하더라도 10만이 넘을 조진 등의 군대를 이겨낸다는 것은 실질 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 후방의 옹, 양이 준동한다면 제갈량의 북벌군은 양동 상태가 되어 버린다. 실제 촉이 이민족에게 가진 영향력이 얼마 되지 못하였음은 도처에서 발견된다.(촉서 이회전, 초주전, 후주전, 강유전 등 참조) 상대적으로 이민족에 대한 영향력이 적은 촉이라 이민족을 끌어들인다 해도 막아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연의 자오곡 기책이 성공한다면 장안의 함락 까지 이며, 실제로는 그러한 함락도 어렵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2-3. 떨어지는 완성도


기책의 가장 최적의 조건은 적이 기책 실행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이를 파악하고서 이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지경이라면, 기책의 완성도는 떨어지는 것이고, 그만큼 성공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위연의 자오곡 기책이 바로 그렇다.


[조진은 8월에 장안을 출발해 자오도(子午道)를 따라 남쪽으로 들어갔다.] - 삼국지 위서 조진전


조진이 230년 자오도를 이용, 남하하였다는 내용은 이미 자오곡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보다 앞서 기록된 진창의 방어를 강화한 내용은 조진이 다른 경로 역시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미 적은 위연이 찌르려는 의표를 알고 있었다. 그 외에 찔릴 수 있는 의표에 대한 방어 역시 확실히 해 두고 있었다. 아울러 2년여 만에 그 길을 역 이용하여 한중을 경유, 촉의 본토를 치려 했다. 위연의 기책은 이미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진 기책이었던 셈이다.


또 진서 선제기에는 사마의가 자오곡을 돌아보며 제갈량이 이 길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한탄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사마의 역시 자오곡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사마의는 해임당해 고향에서 은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사마의는 재기용되어 신성의 맹달을 잡아, 다시 위군에서 입지가 넓어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능히 위군을 자오곡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조진이 자오곡으로 출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국 내에 그들 외에도 자오곡의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결과적으로 위연의 자오곡 기책은 자오곡이라고 하는 의표를 이미 위가 알고 있었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따라서 기책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 진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3. 결어(結語) - 자오곡 기책, 실현 불가능한 계책


기책은 적에 대해서 오랜 기간 연구하여 적이 진실로 모르고 있는 곳을 찔러야 한다. 그러나 위연은 우선적으로 그 의표를 잘못 택해 버렸다. 이미 위의 핵심 장수들은 자오곡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위연의 자오곡 기책은 기책 치고는 여타 다른 기책들과 비교, 그 계책이 매우 상세했음을 알 수 있고, 자기 군대 이외에도 제갈량의 본군이 행군할 수 있는 방향 까지 제시한 것으로 보아 장안 함락 이후에 대한 생각도 충분히 되어 있는 계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국에는 충분히 이들의 병력을 막을 수 있었다. 조진, 비요, 곽회, 장합 등의 걸출한 장수들이, 더구나 적은 수도 아닌 10만을 웃도는 대군을 이끌고 있었다. 장안을 함락하였다고 해도 군사적인 수 차이가 너무나도 심한 것이다. 그 뿐인가? 위연이 택한 자오도는 진령산맥과 자오곡 등 험한 협곡지대를 거쳐야 한다. 지형적으로 보았을 때, 행군은 가능하다 하더라도 장안에 도착해서 병마의 피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행군 도중에 5천 정예의 희생이 매우 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위연의 자오곡 기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실현 불가능한 계책인 것이다. 
                                                                                                                                            

 1) 세 개의 넓은 철판을 두들겨 몸에 맞게 만든 갑옷으로 한반도 가야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갑옷이다. 철 조각이 이어져서 실질적인 방어 부분이 두 겹을 이루게 되는 찰갑과는 달리, 판갑의 경우에는 철판 하나가 피해량을 모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방어력이 비교적 좋지 못하다. 또 찰갑이 이어붙였기 때문에 병사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다면, 판갑은 하나의 철판이 관절을 덮는 경우도 있으므로 병사들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판갑은 일찍 사라지게 되었다.

 2) 실제 판갑 단계의 갑옷 무게나, 찰갑 단계의 갑옷 무게에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과, 군사의 경우 흉갑만 걸치는 것이 대 부분이었으므로, 10kg 정도로 추산한다. 

 3) 혹자는 사냥할 때 입게 되는 피의(皮衣)로 오해하나, 전투용 피갑의 경우, 피의에 비하여 평균 2배 이상의 두께를 가지는 차이점이 있으며, 본래 피의의 용도 역시 방한용으로 피갑과는 다르다. 

 4) 현대의 천리행군 역시 산지를 이용, 40kg정도의 군장을 갖추고 구보로 행군하게 되는데, 현대에도 이 천리행군은 매우 강도가 높은 훈련으로 인식된다. 

 5) 포사도의 별칭이 야곡도, 혹은 사곡도였던 것을 감안 할 때, 포사도가 과히 평탄하지만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덧글

  • 제이 2014/03/12 05:33 #

    이론만가지고 전쟁을하시네 마속과 제갈량이왜 패하엿는지 삼국지를 정독해서 다시읽으셔야 할분이시네
  • 제이 2014/03/12 06:06 #

    등애가 음평으로 우회하여 본토를 바로공격할수도 있다는걸 강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성도에 있는 병력으로만으로도 충분히 막을수있다고 판단을 내렸기에 방비를 하지않앗으며 또 실제로도 농성을하면 충분히 막을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땟는지. 유선은 겁에질려 바로 항복하지 않았던가? 비록 승리는 하였지만 강유에게 이미 사전에 그 수가 간파당하엿으니 기책이라고 할수없는것인지?
    승리하면 기책이고 패배하면 얕은수가 되는것뿐이거늘 해보지도 않고 수가 읽히고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니 기책이 아니다라니...참
  • 푸른화염 2014/03/13 02:29 #

    1.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반론격의 지적만 하시면 될 일이지 '삼국지를 다시 정독 해야한다.'느니, '안정적으로 싸우려고만 하다 피토한 제갈량 여기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꼬시는 것은 썩 불쾌하군요. 제가 님의 태도를 보고 '토론의 기술' 따위의 책이나 정독하시고 토를 다시오-라고 하면 좋으시겠습니까? 내용적 측면에서 말씀하신 바에 대해서는 제가 수용하지 못할 바 아닙니다마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비꼬는 식의 덧글을 접하는 마음은 썩 좋지 못합니다. 혹 덧글을 보시거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시기를 청합니다.

    2. 위 글은 제가 06년에 쓴 글을 08년에 그저 옮겨오기만 한 것이라 지금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도 있는 글입니다. 초보적 단계의 글이라 사료 이외의 참고 자료에 대해서 적어놓지도 못해 '내가 뭘 보고 이딴 소리를 했는가' 싶을 정도의 글이기는 합니다만, 누군가 오류를 지적해 주시면 그것으로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공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3. 말씀하신 바 모두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만- 위연과 등애의 경우를 등치해서 생각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4. 기왕에 가르침을 주신 마당이니 결례를 무릅쓰고 한마디 가르침을 더 청하겠습니다. 마음이 있으시거든 말씀해 주시옵고, 만일 썩 그럴 생각이 없으시거든 피차간에 감정 상하지 않게 그저 무시하고 넘기시기를 먼저 청합니다. 저는 자오곡 기책의 목적을 장안을 함락하고 일대에 실효 지배를 하는 단계-까지라고 상정한 상태에서 위 글을 썼습니다. 그렇다면 장안 함락 이후의 상황이 무엇보다 중요할 터인데 위연이 장안을 얻은 후에 옹주와 양주, 그리고 사예 일대의 위군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저 글을 쓸 때를 상고해보면, 위연이 설령 장안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 이후의 상황에서는 점령의 유지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 터라, 이 마저도 오류가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제이 2014/03/12 05:48 #

    병법서와 확률에만 의존하여 안정적으로 싸우려고만하다 오장원에서 피토하고 죽은 제갈량님이 여기계십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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