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가를 들을 수가 없다. └예부藝部

   
故 박동진 창, 故 김동준 북 - 적벽가 中 적벽화전(1974년 녹음)

옛날에는 적벽가를 잘하는 명창을 최고로 쳤다. 오죽하면 처음 보는 소리꾼에게는 "적벽가 할 줄 아십니까?"하고 공손하게 높이 대하였을까?(故 박동진 명창 증언. 증언에 의하면, 소리꾼이 저 질문을 받은 뒤, 할 줄 모른다고 하면 "춘향가 할 줄 아는가?"하고 묻고, 역시 할 줄 모른다고 하면 "심청가 할 줄 아냐?"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적벽가의 계보를 연구하다보면 한다 하는 명창들이 다 끼어 있다. 가왕(歌王)이란 타이틀을 얻었던 철종대의 명창 송흥록(宋興祿 : 1801~1863 운봉 출신의 명창. 송판 동편제의 비조.)을 비롯하여 헌종~고종 대의 명창 박유전(朴裕全 : 1835~1906 순창 출신의 명창. 서편제와 강산제의 비조. 특히 대원군의 총애를 받았음.), 송만갑(宋萬甲 : 1865~1939 구례 출신의 명창. 송판 동편제), 유성준(劉成俊 : 1874~1949 구례 출신의 명창. 송판 동편제), 이동백(李東伯 1867~1950 비인 출신. 중고제 명창), 김창룡(金昌龍 1872~1935 서천 출신. 중고제 명창) 등 근대의 명창에서 부터 현대에 들어와서는 임방울(林芳蔚 1904~1961 광주 출신의 명창. 동, 서편제.), 김연수(金演洙 1907~1974 고흥 출신의 명창. 동초제 판소리의 비조.)에 이르기까지 명창으로 손 꼽히는 수많은 소리꾼들의 장기에는 꼭 적벽가 한 대목이 포함되어 있다.

나도 적벽가를 가장 좋아해서 적벽가를 배울 때 가장 신경 써서 배웠다.(그래서 지금도 누가 판소리 한 대목 시키면 적벽가를 주로 한다.) 그런데 요새는 별로 썩 들을 만한 적벽가가 없다. 우선, 판소리의 음원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적벽가를 듣지 않기 때문에 소리꾼들도 배우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창극 역시 적벽가 보다는 춘향가와 심청가, 흥보가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문학적인 연구 역시 다른 네 바탕의 소리와 실전된 소리들에 주목되어 있다.

이제 적벽가를 할 수 있는 예능보유자는 서편 적벽가의 명인 한승호(韓承鎬 : 1923~)와 송판 적벽가의 송순섭(宋順燮 1936~) 뿐이다. 1989년 명창 박봉술(朴奉述 1922~1989 송판 적벽가의 명인)을 필두로 하여 2003년, 거목 박동진(朴東鎭 1916~2003 조학진판 적벽가. 동, 서편제 및 중고제에 통달한 명인) 명창에 이르기까지 적벽가의 초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던 세 사람중 두 사람이 죽었다. 남아 있는 한승호는 고령에 건강도 좋지 못하다(수년 전까지만 해도 뇌경색으로 투병을 했었다.). 더군다나 한승호는 제자가 없다. 박동진의 적벽가 역시 뚜렷한 승계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강정자, 김양숙 등이 있으나 모두 보유자 신분은 아니며, 공력이 특출 나지 않다.), 박봉술의 적벽가는 2002년 송순섭이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준보유자로 김일구가 있으므로 나은 편이나 그나마도 지금 부르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무섭다. 이러다가 적벽가가 완전히 사장될 것 같아서.


덧글

  • 낙타친구 2008/03/04 02:14 #

    적벽가뿐이 아니라 아예 판소리 듣기가 어려워져서..무섭습니다. 박동진 명창의 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듣습니다. 잘 듣고 갑니다.
  • 푸른화염 2008/03/04 13:40 #

    낙타친구//그나마 춘향가, 심청가를 비롯한 나머지 네 바탕은 음원 자료나 공연도 많은 편(상대적으로 말이죠.) 적벽가는 그 적은 가운데에도 없으니 그게 안타까울 노릇입니다. 무튼,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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