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 전설의 귀환 - 원조는 죽지 않았다. └예부藝部

전설의 귀환 - 원조는 죽지 않았다.

 

이광수, 최종실, 남기문, 김덕수(짤방은 네이버 검색에서)


   2008년 3월 6일, 내가 작년부터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공연, 그 공연을 결국에 보고야 말았다. 원년멤버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94년 국악의 해 기념 공연을 내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필코 보고야 말리라 하며 이를 갈고 있던 터라 얼마나 부산을 떨었는지 그 얘기를 다 하면 몇날 며칠이 모자랄 것이다.


이번만큼 디카가 없는 것이 후회스러울 줄 몰랐다. 내가 손을 좀 잘 떠는 편이라 핸드폰 사진기로 좋은 사진을 찍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하긴 디카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거기다가 핸드폰 자체도 별로 좋질 못해서 화질도 별로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냥 사진을 못 찍었는데 이런 건 사진을 찍어야 된단 말이지.(일단 지금은 검색해서 찾은 사진으로 만족해야지. DVD 출시 될 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반드시 산다.)


일단 오늘 공연의 면면을 좀 살펴보자.

이광수, 1952년 충남 예산 출생. 부친 이점식은 만주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이름난 꼭두쇠(남사당의 우두머리.)였다. 요새 애들한테 이광수 선생님을 설명하면 꼭 이름이 동일한 친일파를 연상하므로 아스트랄이다. 1978년 창립 당시에는 비나리쇠1), 앉은 반2) 북 겸 부쇠, 선반3) 상쇠를 맡았다가 1984년, 김용배(작고)가 탈퇴한 이후에는 앉은 반의 상쇠도 맡았다. 이광수는 풍물 전반에 대한 이해와 실기가 고루 풍부했다. 특히 비나리를 비롯한 소리의 경우에는 당대 동년배 국악인 중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목구성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부친 이점식을 따라 처음 무동(舞童)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남형우가 이끌고 있던 남형우 행중에서 꼭두쇠4) 남형우(남운용), 상쇠 잽이 최성구(김용배의 양부)에게 상모놀음과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송순갑에게도 배웠다. 차기준, 황금만 등으로부터 비나리의 기본을 배웠다. 또한 본래 중으로 독경에 능통했던 김복섭에게 비나리와 함께 각종 축원 덕담을 배웠다. 또한 김광열로부터 부포 놀음을 배워 웃다리5) 상쇠의 역동적인 채발림과 호남계열의 아름다운 부포 놀음을 조합한 그만의 독창적인 선반 쇠 스타일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이번 역시 84년 이후의 포지션 그대로 선반, 앉은 반 상쇠와 비나리쇠를 맡았다.



김덕수, 1952년 충남 대전 출생. 부친 김문학은 열두발 및 채상모 놀음의 대가였으며 소고를 잘 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장고의 명인으로 사물놀이 하면 먼저 이 사람을 떠올릴 정도로 사물놀이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사람이다. 1978년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쭈욱 장고를 맡고 있다. 사물놀이가 처음 창립 된 것도 김용배와 김덕수 두 사람의 의기투합 덕분이었다. 역시 남형우 행중에서 꼭두쇠 남형우를 비롯, 양도일, 부친 김문학 등에게 악기와 상모놀음을 배웠고 나중에는 김병섭과 같은 호남 설장고의 명인들에게도 가락을 익혔다. 그의 장고는 느린 템포에서건 빠른 템포에서건 ‘호흡’이라는 국악의 기본기를 바탕에 깔고 있는, ‘기본에 충실한 화려함’을 갖추고 있다. 특히 빠른 템포에서는 속도가 하늘까지 뻗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엄청난 빠르기를 자랑한다. 그의 장고 소리는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시원한 빗소리다. 뿐만 아니라 상모놀음과 연풍대와 같은 선반의 기교 역시 뛰어나 독보적인 존재로 꼽힌다. 또한 이광수와 함께 김복섭에게서 비나리를 배웠고, 국악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정권진, 김소희 등에게 판소리도 배워 국악의 이론과 실기에 두루 능하다. 이번 역시 장고를 매고 나타난 그는 예의 그 빗소리 같은 시원한 장고 놀음을 보여주었다.(연풍대 보고 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최종실, 1953년 경남 삼천포 출생. 부친 최재명으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 부자 7명이 모두 진주, 삼천포 12차 풍물의 명인이다. 역시 어린 나이에 부친의 손에 이끌려 풍물판의 끝 소고6)로 뛰기 시작했다. 진주, 삼천포 지역의 명인들로부터 소고춤과 상모놀음을 전수 받은 그는 풍물 춤의 달인으로 통하며 그의 자반뒤집기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오죽하면 한 대회에 출전한 어린 최종실의 소고춤을 보고 당시 그 대회의 심사위원이었던 김복섭은 신동이라고 감탄을 마지않았다고 할 정도였을까? 또한 징을 치는 솜씨 또한 뛰어나서 그 울림이 개성이 강한 다른 악기의 울림을 잡아줌으로서 사물놀이의 음악적 성숙에 크게 기여했다. 78년 결성 당시에는 앉은 반 징, 부북, 선반 징/소고를 맡았는데 84년 김용배가 탈퇴한 이후로는 앉은 반 북/부쇠, 선반 징/소고로 옮겼다. 이번 역시 84년부터 맡았던 그 포지션 그대로 나왔다. 예전 녹음이나 그런 걸 볼 때는 몰랐는데 징소리가 훨씬 깊은 맛이 있더라. 무엇보다도 가장 부러운 건 예나 지금이나 넘어질 듯 안 넘어 지면서 관객 마음 졸이면서 넘어가는 그의 독보적인 자반뒤집기다. 보는 순간 “배우고 싶다...” 이랬으니까...


남기문, 1958년(맞나? 기억 가물가물...) 출생지 까먹었다. 남형우의 아들이며 아마 슬하 삼형제 중 장남인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지 않은 추억을 가진 사람이지만 어쨌거나 쓰자. 이 양반은 부모가 다 남사당이다. 몇 년 전에 작고한 박계순씨가 어머니니까 부모가 남사당 예능보유자였던 거다. 이분은 78년 창립 당시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원년멤버도 아니었다. 다만, 84년, 탈퇴한 김용배가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의 상쇠가 되면서 거기서 장고 잽이를 맡았었다. 그러다가 1년 정도 버티던 중 떠났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에게 풍물의 기본기를 사사 받고 현재는 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팀의 대빵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운하 선생이라는 분이 계셨었는데 이분이 아마 정년인지 그래서 퇴임을 하셨던 걸로 안다. 사실 남기문 씨의 공연은 별로 본 바가 없어서 과거에는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녹음 들어보니깐 역시 명인은 명인이더라. 이번에는 앉은 반 징/부북, 선반 북으로 나왔다.


저렇게 네 사람으로 이루어진 오늘의 공연 팀은 역시 대단했다. 문굿->비나리->삼도설장구->삼도풍물가락->판굿 으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 앞쪽에 앉아서 문굿을 제대로 못 본 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비나리를 앞에서 쌩으로 들으니 거의 내가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지. 이광수 선생님의 비나리는 꽤 많이 들어봤는데도 들을 때 마다 새롭고 대단했다. 더군다나 도대체가 몇 년 만이냐 말이다. 원년멤버의 비나리 반주 말이다. 삼도설장고는 작년에 쇼바이벌에서 신해철이 스윗소로우에게 했던 평가를 그대로 Ctrl+C, Ctrl+V 한다. “네 사람의 실력이 매우 고르게 되어 있어서 누구 하나도 모자라지 않고 최고의 기량을 보였다.” 악기가 동일한 악기이기 때문에 자칫 묻히거나 떨어지면 티가 확 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삼도 풍물 가락은 말도 마라. 맨 앞에서도 그거 보느라고 눈에 힘주는 바람에 머리가 아픈 걸 생각하면... 풀어져 있던 것이 순식간에 빨라지면서 돌아가는데 네 악기의 개성이 모조리 표출되더라. 나는 언제나 저런 빠르기에 저런 호흡이 묻어 나올까? 를 고민했다고.... 판굿은 이건 뭐 내가 그 경지가 되기에는 완벽한 넘사벽이 존재하니 그냥 한마디로 끝낸다. “좋았다!!” 이거다.


전설의 귀환, 원조는 죽지 않았다.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아니 과거 내가 비디오를 통해 보았던 산토리홀 공연보다 더 좋았다. 누가 그러더라. 국악은 남녀노소가 하는 것을 다 들을 가치가 있다고. 남자가 하면 멋있고, 여자가 하면 아름다우며 노인이 하면 깊은 맛을 볼 수 있고 소년이 하면 패기가 넘치기 때문이라고. 이번 무대는 그야말로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네 명인의 내공이 담긴 그런 무대였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흐으...


그나저나 사진을 못 찍은 게 한이다. 더불어 무대 위에서 뒤풀이 하고 일이 있어서 싸인도 못 받고 바로 나와야 했다는 건 크나큰 한이다.


오리지널 원년 멤버 : 이광수, 김덕수, 최종실, 김용배(작고)
84년 이후 원년 멤버 : 이광수(하단 좌측), 김덕수(하단 우측), 최종실(상단 우측), 강민석(상단 좌측)
기념공연 멤버 : 남기문,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짤방은 모두 인터넷 검색에서 펌. 허락 없이 퍼왔는데 괜찮으려나.....)
                                                                                                                                             

1) 비나리를 부르는 잽이. 비나리는 남사당이 부르는 일종의 축원 덕담으로 경기, 충청 지역의 비나리의 경우 불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2) 앉아서 연주하는 것 

3) 서서 연주하는 것, 판굿. 

4) 남사당패의 우두머리 

5) 남사당패의 구분법으로, 남사당패는 충청도 이북의 판제(가락, 판굿, 진법)를 웃다리, 호남을 비롯한 영남 지역의 판제를 아랫다리라고 구분해 불렀다. 

6) 소고 행렬 중 가장 끝에 서는 소고. 어리고 연차가 적은 잽이들이 맡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