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고(名唱考) - 00. 서문(序文) └예부藝部

 

명창고(名唱考) 

- 00. 서문(序文)


예부터 선비는 육예(六藝)를 갖추어야 한다하였으니, 육례라 함은 곧 예의(禮), 음악(樂), 궁술(射), 승마(御), 문장(書), 수학(數) 등을 이름이다.


옛적에야 사민(四民)이 있고, 각기 정명(正名)을 중히 하는 바가 지나친 고로 신분의 고하를 생각하였으니, 선비라 함은 곧 사대부(士大夫)를 일컬음이겠으나, 당금에 이르러는 신분의 고하가 없이 평등하게 되었으니, 어찌 ‘선비’를 사대부에 지칭하겠는가? 생각건대 이는 교양인(敎養人) 쯤으로 생각함이 옳을 일이다. 근년(近年)에 이르러는 만민(萬民)이 모두 고루 교육을 받게 되었으니, 어찌 교양인이 되지 못할 자가 있겠는가? 이러한 가운데에 육예(六藝)를 갖추는 일은 더욱 중히 여겨졌다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건대, 많은 사람들은 예(禮),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다섯 가지 예(藝)는 그 중함이 크게 알려진 고로, 지금도 그 다섯 가지의 덕목은 잘 갖추었지만, 음악에 대하여는 그렇지 못한 것이, 남의 음악을 듣는 귀는 두었어도 우리 음악을 듣는 귀는 두지 못하였다. 그러한 고로, 국악(國樂)은 점점 사라져 그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중년(中年)에 가만히 생각하니 지금 세상은 문화(文化)가 중시되는 바가 큰 고로, 만국곤외(萬國閫外)의 사람들이 서로 그들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지마는, 당금 우리 곤내(閫內)의 사람들은 오직 그들의 것만을 받아들이는 바가 있고 우리의 것은 알려고 하지 아니하니,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점차 우리 것이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미 정보를 주고받는 일은 빨라져서 마치 한 동리(洞里)에 사는 것 마냥 세계가 통하게 되었으니 '지구촌(地球村)'을 일컫는 마당에 남과 나를 가르는 것이 가당하지 않은 줄은 알지마는, 그러한 시대에도 엄연히 국가의 품격이 존재하고 주객(主客)은 나뉘는 법이라, 그러할 진대 우리 것을 모르고서야 어찌 문화로 다른 나라를 선도할 수 있겠는가? 이는 진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으니, 나는 이때로부터 본(本) 고(考)를 쓰려는 뜻을 흉심(胸心)에 품게 되었다.


어찌 프레디 머큐리와 같은 절창(絶唱)들이 영미서구(英美西歐)에만 있었겠으며, 경극(京劇), 가부키와 같은 연희(演戱)가 중일(中日) 양 국에만 있었겠는가? 우리에게도 가면무(假面舞)가 있고, 산대놀이가 있으며 가왕(歌王) 절창들이 있거늘 구태여 그들의 것만을 찾으니 이 일을 어찌 옳다고만 하겠는가?


나는 본래 교양(敎養)이 없고, 학식(學識)도 모자란 고로 어찌 교양인을 칭하겠는가마는, 선대(先代)의 음덕(蔭德)을 얻어 육예 중, 음악(樂)의 덕목은 우리 고래(古來)의 것에 한 하여 조금이나마 익힌 것이 있어 그 귀가 틘 편이었으니, 적어도 육예를 모두 모르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내 어찌 이 글을 쓸 마음을 먹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감히 그 엄두조차 내질 못하였으리라.


다만, 원체 지나치게 게을러서 어느 일을 생각하고도 감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바가 많았는데 이 글을 씀에 있어서도 흉금(胸襟)에 뜻을 품은 지는 오래 되었지마는, 나태한 성품을 고치지 못하였고, 또한 아는 바가 없고 글을 쓰는 재주는 진실로 천박할 따름이라 감히 손을 대지 못하다가, 올 정월에 들어 비로소 그 계획의 구체(具體)를 세우게 되었으니, 지금 두려운 바는 오직 이 글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혹여 잘못된 지식을 옳은 것인 양 왜곡(歪曲)하진 않을까 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처음에 이 글을 쓰려 할 때에는 정악(正樂)과 속악(俗樂)을 모두 적으려 하였으나, 내가 정악을 제대로 배우질 못하였고, 속악 중에서도 특히 판소리와 같은 성악(聲樂)을 제외하고는 가지고 있는 자료가 일천하니, 차마 지금은 그것을 모두 건드릴 엄두를 내질 못하였다.


‘판소리’라는 것은 그 처음을 상고(詳考)할만한 사적(史籍)이 많지 않다. 다만 동해안의 여러 무격(巫覡) 의식(儀式)에 ‘심청’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고, 그 이야기가 무당이나 박수가 독창하는 무가(巫歌)로 남아 있는 바를 보아서는 그 시작이 ‘무가’인 것으로 추정하니, 판소리의 시작을 따지는 정설로 삼는다.1) 영조(英祖) 대의 문장가 유진한(柳振漢)의 『만화집晩華集』에 <가사 춘향가 200구>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이것을 판소리에 대한 첫 기록으로 보며, 이를 바탕으로 숙종 조를 전후한 시기부터 판소리가 유행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 초기에 활약한 이들로는 우춘대(禹春大), 하한담(河漢潭), 최선달(崔先達) 등을 꼽는데, 이들을 보통 판소리 시창(始唱), 혹은 효시(嚆矢)로 보는 즉, 마땅히 ‘명창고’라는 제목에 따르면 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적어야 할 것이나, 상고할 사적이 적으니 감히 함부로 적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조선조 순조(純祖) 대왕 때에 고창에 신재효(申在孝)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판소리의 법례를 가장 처음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지은 단가(短歌)2)로 광대가(廣大歌)라는 것이 있다. 이 단가는 판소리를 하는 소리 광대의 덕목을 다룬 것이로되, 말미(末尾)에 아홉 사람의 명창을 소개해 두었다. 이 아홉 사람 중 여덟 사람을 선고(選考)하여 전기 8명창이라 일컫기도 하는 즉, 이 아홉 사람으로부터 판소리가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여, 나 역시 이 아홉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다루려 한다. 특히 다른 사람은 선대의 삼인과 그 관련이 없으나, 오직 권삼득(權三得) 만이 확실하다 할 수는 없어도 최선달, 하한담 등에게 배웠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선대의 3인과 가장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또한 이 사람은 8명창을 선고할 때에는 반드시 그 필두에 넣는 사람인데다, 광대가에 소개 된 아홉 명창 중에서도 그 연배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으니 글의 시작을 권삼득으로 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불학(不學)하기 그지없는 도필리(刀筆吏)에 불과한 나 같은 사람의 몇 글자가 육예의 덕목을 깨치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되겠으며, 또한 그 누가 부족한 글을 읽어 주겠는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이렇듯 글을 남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음악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알고 인지하기를 바라는 뜻이다.
                                                                                                                 

1) 혹은 세습 광대(廣大)의 무리에서 연희되던 재담이 독창으로 변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본래 무가의 형태에서 시작된 것에 광대들의 재담이 섞이면서 전승된 것이 아닌가 한다.

2) 단가(短歌)는 허두가(虛頭歌)라 하는데, 본래 가곡(歌曲), 시창(詩唱)에서 발달한 평조 성음으로 부르며, 소리 광대가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덧글

  • 耿君 2008/04/04 08:49 #

    중간에 假王이라고 쓴 것이 맞습니까? 歌여야 할 것 같은데 거짓 왕이 되어버렸네요.

    아 이건 딴지는 아니지만, 대략 어떤 식으로 내용을 전개할 건지에 대한 막연하나마 개요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약간 부족하네요.
  • 푸른화염 2008/04/04 11:10 #

    耿君//오타수정했습니다.(새벽에 급하게 써 갈겼더니 역시 이런 일이 발생하는군요.) 흑, 그럴 줄 알고 올리길 주저했는데 역시... 일단 비공개로 돌려두고 오늘 맑은 정신에서 몇 군데 손 봐야 할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문단의 순서라던가... 지금 살피니..... 도필리 운운하는 문단은 맨 마지막에 와야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는군요...)
  • 耿君 2008/04/06 11:43 #

    그러고보니 제 친구가 지금 판소리로 석사 논문을 쓰고 있군요.
  • 푸른화염 2008/04/06 14:55 #

    耿君//하필 주위에 전공자가 계셨었군요.........(왜인지 글 쓰기가 더 무서워지는 느낌.)
  • 耿君 2008/04/06 15:22 #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요 ㅋㅋㅋ 혹 관련하여 서로 이야기해 볼 수도 있고 좋겠다 싶은 마음에얘기한 겁니다 ㅋ 그 친구는 여성인데, 실제로 판소리 배우고 있기도 합니다.
  • 푸른화염 2008/04/06 15:50 #

    耿君//배우고 계신 분이라(흥미도 급상승.)..... 배우고 계신 유파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근데.... 혹, 국악전공이라거나, 국문학 전공이신가요?) 아차, 글 쓰기가 무서운 느낌은 훠얼~~~씬 전 부터 느끼고 있었던지라..........(땀 삐질.)
  • 耿君 2008/04/06 22:30 #

    국문학 전공입니다. 동편소리이고, 박녹주 선생님의 제자의 제자에게 사사하고 있다는군요.
  • 푸른화염 2008/04/07 00:02 #

    耿君//오옷! 좋은 바디(판소리에서 명창이 스승으로부터 전승하여 한 마당 전부를 절묘하게 다듬어 놓은 소리.)로군요!
  • 소하 2008/04/08 11:52 #

    좋은글 잘 봤습니다. 특히 문체가 고풍스러워 더욱 멋지군요.
  • 푸른화염 2008/04/08 13:16 #

    소하//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졸문에 격찬을 아끼지 않아주시니 그저 후학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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