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5바탕의 전승 계보 소개 └예부藝部

 

판소리 5바탕1)


1) 적벽가(赤壁歌)

① 개관 : 적벽가는 『화용도(華容道)』라고도 한다.2) 과거, 대중에게 ‘명창(名唱)’으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인 소리로 통했다. 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명창 대 부분은 적벽가 몇 대목씩은 장기로 삼았다.


② 적벽가의 현존 전승계보


  ②-1. 동편제(東便制)


    ㄱ. 박봉술(朴奉述) 바디3) : 송흥록 → 송광록 → 송우룡 → 송만갑 → 박봉술

           박봉술 바디는 유성준(劉成俊) 바디와 함께 송판(宋版)이라고도 일컬어진다. 현재 가장 널리 성창되고 있으며, 現 예능보유자 송순섭(宋順燮) 명창을 필두로, 김일구(現 판소리 전수조교. 박봉술 바디 적벽가 준 보유자), 안숙선(現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병창부문 예능보유자), 박송희(現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박녹주 바디 흥보가 예능보유자), 전인삼, 왕기석, 왕기철 등 많은 명창들이 이어 부르고 있다.(필자의 적벽가 역시 송판 적벽가를 근간으로 둔다.) 사설이 엄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룡 활 쏘는 대목(자룡탄궁)과 새타령 등이 유명하다. 유사한 계열로는 유성준 바디가 있는데, 유성준 바디는 제자가 없는 임방울과, 새로운 창제를 정립한 김연수(金演洙 : 동초제의 창시자) 계열을 제외한 다른 전승자들이 모두 박봉술 바디를 배워 그것을 자주 부르므로 흡수되었다 할 수 있다.


    ㄴ. 박동진 바디 : 정춘풍 → 박기홍 → 조학진 → 박동진

           박봉술 바디와 함께 무형문화재로 지정 된 계보이다. 지정 자체는 조학진 바디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조학진의 소리와 박동진의 소리는 그 창법 면에서 차이가 많고, 박동진이 조학진에게 사사받았다고 하기 보다는 그 밑에서 공부 하며 그의 ‘영향’을 받고, 그를 바탕으로 재창조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박동진 바디라 볼 수 있다. 사설이 가장 길고 수록하고 있는 대목도 가장 원작 삼국지연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도원결의-삼고초려(박망/장판 대전 포함)-적벽싸움-조조패주 등으로 대목을 정리할 수 있으며, 사설에 재담과 육담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준 보유자로 강정자, 이수자로 김양숙 등이 있어 사설을 모두 전수 받았기는 하지만, 완벽히 구사하고 있지는 못하다.


  ②-2. 서편제(西便制)


    ㄱ. 김채만(金采萬) 바디 : 박유전 → 이날치 → 김채만 → 박동실 → 한승호

           정통 서편제 적벽가로는 유일한 바디로, 현(現) 인간문화재 한승호(韓承鎬. 본명 갑주甲珠)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승자가 없다.(그러나, 한승호의 창법이 동, 서편을 아우르고 있으므로 통상 겸제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설의 전체적 구성은 박봉술 바디와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자진모리장단의 비율이 낮고,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의 비율이 높다. 전승자가 적은 편이라 널리 성창되지 않는다.


    ㄴ. 김연수 바디 : 유성준, 정정렬 → 김연수 → 오정숙

           동초제는 전체적으로 서편제의 정정렬과 동편제의 유성준, 두 명창의 소리를 근간으로 한다. 그 것은 김연수 자신이 유성준과 정정렬 두 사람에게 가장 오랜 기간 사숙하였기 때문이다. 김연수는 사설집인 《창본 춘향가》에서 1935년, 적벽가의 전판을 수득하였다고 하였는데, 정확히는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우고 적벽가를 더 배우다 사설의 오자낙서(誤字落書) 및 박이 다른 장단의 문제를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였다가 크게 다투고 나와서 정정렬에게 수득한 것이라 한다. 사설이 엄정하기 이를 데 없고, 한문사설을 고어체로 풀어놓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적벽가는 적벽화전 바로 뒤에 새타령이 오는데, 김연수는 내용의 합리화를 위하여(새타령의 ‘새’는 적벽에서 죽은 군사들의 원혼이므로, 원혼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두기 위하여 그리 하였다 한다.), 조조가 관운장을 만나는 대목 바로 전에 새타령을 집어넣었다. 현재 춘향가 예능보유자인 오정숙을 필두로, 이일주 등이 부르고 있지만, 역시 성창되지는 않는다.

    

   ②-3. 강산제(岡山制)


    ㄱ. 정응민(鄭應珉) 바디 : 박유전 → 정재근, 이동백, 김찬업 → 정응민 → 정권진

           서편제의 비조(鼻祖)이기도 한 박유전(朴裕全)은 어전광대가 되기 전, 서편제로 일가를 이루어 명성을 얻었으며, 말년에 새로운 소리제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바로 강산제라 한다. 그러나 강산제가 완벽하게 완성 된 것은 정응민 대의 일이며, 정응민은 박유전의 제자이며 숙부인 정재근의 소리 뿐 아니라, 중고제의 이동백, 동편제의 김찬업 등에게서도 소리를 배워 이를 적용하였다. 이중, 적벽가는 중고제와 동편제를 중심으로 정리되었다. 사설이 엄정하고 청아한 멋이 있는데, 이는 박유전이 어전광대가 된 이후 속어로 된 사설을 일부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적벽가에 비해 평조 선율이 많이 쓰이고 있으며, 다른 판소리에는 없는 ‘세마치(자진진양)’ 장단이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이 적벽가는 정권진의 아들인 정회석과 윤진철 등이 부르고 있으나 역시 널리 성창 되지는 않는다.


2) 흥보가(興夫歌)


① 개관 : 흥보가는 『박타령』이라고도 한다.4) 현존하는 다섯 마당 중, 수궁가와 함께 가장 재담이 많은 소리이며, 많이 창극화 된 소리이기도 하다. 특히 판소리의 중흥조로 손꼽히는 8명창의 필두인 권삼득이 잘했다 한다.


② 흥보가의 현존 전승계보


  ②-1. 동편제


    ㄱ. 강도근(姜道根) 바디 : 송만갑 → 김정문, 송만갑 → 강도근 → 전인삼, 안숙선

           송판 동편제 흥보가로도 불리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후술(後述) 할 박녹주 바디와 함께, 큰 틀로는 김정문 바디에 속하는데, 강도근의 사설이 상대적으로 토속적이고 남성적이며 재담이 많은 편이다. 엄밀히 말해 강도근은 김정문에게 흥보가 전 바탕을 다 떼었으며, 송만갑에게 약간의 교정을 받았다 한다. 송만갑은 흥보가를 철성(鐵聲)5)으로 불렀는데, 강도근도 그리 불렀다고 전한다. 강도근은 생전에 이진영(李鎭榮)에게 놀보 박타령을 배웠다고 하는데, 현재 전승되고 있는 그의 바디에는 놀보 박타령이 없다.(강도근 바디는 놀보가 제비 몰러 나가는 대목까지 하고 나머지는 후일담으로 뭉뚱그려 버린다.) 강도근이 96년 작고함에 따라, 현재는 보유자가 없고, 이수자인 전인삼과 강도근의 조카 안숙선 등이 전승하고 있다. 전인삼의 것은 강도근의 것과 비슷하고 안숙선의 것은 사설만 차용하였을 뿐, 성음 놀음이나 기타의 모든 것은 김소희의 것과 상통한다.


    ㄴ. 박녹주(朴綠珠) 바디 : 송만갑 → 김정문, 송만갑 → 박녹주 → 박송희

           가장 널리 성창되는 바디이며, 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 되었다. 강도근과는 달리 송만갑에게 먼저 소리를 배웠고, 김정문에게는 흥보가만 배웠다 한다. 강도근 바디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재담이 적은 것이 사실이나, 단일 바디로 봤을 때는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다. 전체적인 짜임은 강도근의 바디와 유사하다. 박록주 역시 놀보 박타령은 부르지 않았는데, 67년, 명창 정권진의 북반주로 녹음한 지구레코드 녹음 본이 있어서 참고할 만하다. 강도근 바디가 상대적으로 송만갑-김정문 계통의 소리에 치우쳐 있는데 반해, 박녹주의 바디는 송만갑-김정문 계통의 것을 근간으로 하여 서편제 정정렬이나 김창환 등의 스타일을 참고 하여 짜여진 것으로 보여 진다. 현재는 현 예능보유자 박송희를 필두로, 이옥천, 정유진, 조상현 등이 전승하여 부르고 있다.


    ㄷ. 박봉술 바디 : 송만갑 → 박만조 → 박봉래 → 박봉술 → 송순섭

           박녹주의 것 다음으로 성창되는 바디이며 박녹주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설이 점잖은 면이 있다. 박녹주의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후반부의 경우에는 송만갑의 제자인 장판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장판개의 흥보 제비 노정기를 차용하여 놀보 제비 노정기로 새로 짰는데, 이 제비노정기는 박녹주, 강도근 등의 사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아마도 이것이 송판의 제비노정기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현재는 송순섭이 그를 전승하고 있다.(필자의 흥보가 역시 박봉술 바디를 근간으로 삼는다.)


    ㄹ. 김연수 바디(동초제) : 송만갑 → 김연수 → 오정숙

           김연수는 스스로 밝히기를 송만갑에게서 흥보가의 전판을 수득하였다 하나, 실상 송만갑 바디의 다른 것과는 상이하고, 오히려 신재효 본을 비롯한 당대에 널리 퍼진 활자본, 소설본 등을 차용한 것들이 많다. 오정숙, 이일주, 송재영 등이 부르고 있다.

  

  ②-2. 서편제


    ㄱ. 김창환 바디 : 박유전 → 정창업 → 김창환 → 김봉학 → 정광수

           가장 대표적인 서편제 계열의 흥보가로, 후기할 박지홍, 박동진의 흥보가는 모두 김창환의 것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특히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더늠으로 동, 서편을 막론하고 수많은 명창들이 차용해 불렀을 정도였다. 정광수는 김창환에게서 직접 배우지는 못했고 그 차남인 김봉학에게 배웠다고 한다. 정광수 자신도 제비노정기를 자진 중모리로 부르고 있는데, 김창환은 자진모리로 불렀다고 증언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 증언이 사실이라면, 실제 김창환 바디로 일컬어 지는 것도 실상은 정광수가 짠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정광수의 사설과 박동진, 박초월의 것이 거의 유사하므로 대부분은 김창환의 원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3년, 정광수가 작고한 이래로는 부르는 명창이 거의 없다.


    ㄴ. 박지홍 바디 : 박유전 → 정창업 → 김창환 → 박지홍 → 박초월

           박초월은 동편제 수궁가의 명창으로 날렸으나, 실상 서편의 소리를 많이 했다한다. 이중 흥보가는 김창환의 바디를 중심으로 박지홍이 새로 짰다고 한다.(혹자는 박초월이 짰다고도 한다.) 박초월은 여류 명창으로는 드물게 재담과 육담을 잘 하였는데, 그녀의 흥보가에도 그러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는 조카이자 양아들이며 그의 직계 후계로 손꼽히는 명창 조통달이 부르고 있다.


    ㄷ. 박동진 바디 : 박유전 → 정창업 → 김창환 → 박지홍 → 박동진

           박동진이 박지홍에게서 대략적으로 배운 것을 다시 짠 소리로, 전체적으로는 서편제의 법통에 속한다. 역시 김창환 원형의 사설에서 커다란 변화는 없으나 놀보 박타령이 매우 길게 짜여 있다. 박동진의 흥보가는 완창에 5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1968년, 사상 첫 완창 발표회를 통하여 박동진을 일약 판소리계의 스타로 만들어 버린 소리이기도 하다. 사설에 재담과 육담이 풍부하며, 장단의 변화가 다채롭고, 계면과 평조 중심의 선율로 짜여 있다. 현재는 박동진의 제자인 김양숙 등이 전승하고 있으나 완벽히 구사하고 있지는 않다.


3) 수궁가(水宮歌)


① 개관 : 수궁가는 『토별가』의 별칭으로 알려져 있다. 충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소적벽가』라는 별칭도 있었다고 한다. 5대가 중, 유일한 우화로서 풍자성이 짙다.


② 수궁가의 현존 전승계보


  ②-1. 동편제(東便制)


    ㄱ. 정광수 바디 : 유성준, 정응민 → 정광수 → 안숙선

           무형문화재 지정 바디로 정광수 바디는 동편제 사설 중에서도 한자어의 비율이 가장 높다. 이는 정광수가 가학(家學)으로 인해 한자어를 많이 알고 있었던 때문으로 생각된다. 특히 고제에 가까운 소리로 알려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재담이 좀 적은 편이다. 근간은 동편 유성준의 것으로 삼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정응민의 강산제 소리를 차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는 2003년 정광수 작고 이후 보유자가 없이, 이수자인 김수연과 가야금 병창 예능보유자 안숙선 등이 부르고 있다.


    ㄴ. 유성준 바디 : 유성준 → 정광수 → 박초월 → 남해성, 조통달, 왕기석

           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박초월은 정광수에게서 수궁가의 기초를 닦았으나, 정작 정광수의 수궁가 보다 유성준의 원형에 가깝다. 유성준의 소리는 송만갑의 것과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역시 크게는 송판에 속하는 소리다. 박초월은 이전에 송만갑과 김정문에게서 배운 적이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송만갑 등의 사설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외에도 유성준의 문하에는 박동진, 강도근, 임방울, 김연수 등의 명창이 있었는데, 강도근의 것은 유성준의 것과 차이가 거의 없고, 조통달이 임방울에게 배운 적이 있지만, 수궁가는 사사 받은 적이 없으므로 임방울의 것은 전승이 끊겼다. 또한 박동진의 것과 김연수의 것은 개작이 많아 새로운 바디로 친다. 현재는 남해성, 조통달, 왕기석 등이 부르고 있는데, 이들 셋의 소리가 각자 약간씩 다르다.


    ㄷ. 박봉술 바디 : 송만갑 → 박만조 → 박봉래 → 박봉술 → 송순섭

           박봉술의 것은 무형문화재 비지정 계보 중 가장 널리 성창 되고 있다. 다른 바디에는 없는 대목들이 몇 있어서 다른 계보보다 약간 길이가 길다. 진양 장단이 24박에서 벗어남이 없으며, 그 이외에는 다른 동편제의 것들과 유사한 편이다. 현재는 송순섭, 김일구 등이 부르고 있다.


    ㄹ. 박동진 바디 : 유성준 → 박동진

           박동진은 수궁가를 유성준에게서 배웠다. 박동진이 보유한 다른 바디와 마찬가지로 유성준의 것에서 다른 사람의 것을 참고하고, 또한 자신이 창조하여 새롭게 짠 것이 박동진의 수궁가다. 박동진의 수궁가는 4시간 30분~5시간 정도가 걸리게 짜여져 있으며, 중중모리 장단이 많고, 상좌 다툼 대목이 날짐승, 길짐승의 것 두 가지가 모두 있어 매우 길게 짜여 있다. 무엇보다도 별주부가 호랑이 쫓는 대목이 매우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짜여져 있다. 김양숙이 이어 받았으나 완벽히 구사하고 있지는 못하다. 우조와 평조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ㅁ. 김연수 바디 : 유성준 → 김연수 → 오정숙

           김연수의 수궁가는 창제는 유성준의 것을 근간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김연수는 판소리의 합리성과 치밀성을 극대화 시켜서 새로운 바디를 짜게 되었는데, 그런 면에서 유성준과도 갈등이 있었다. 하여, 김연수는 유성준의 것을 소화한 뒤에, 신재효본의 토별가의 사설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 신재효본이 따로 불렸다는 사실은 들은 적이 없으므로 이는 김연수가 새로이 작곡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정광수와 마찬가지로 정응민의 소리를 꽤 많이 차용해 넣었다. 역시 한문 사설을 고문체로 풀어 놓았고, 박을 지키는 것이 엄정하게 되어 있다.


  ②-2. 강산제6)

         

    ㄱ. 정응민 바디 : 박유전 → 정재근, 이동백, 김찬업 → 정응민 → 정권진 → 정회석

           정응민 바디의 강산제 소리는 전체적으로 사설에 욕설이 적고 점잖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수궁가는 같은 바디의 춘향가와 함께 그러한 특질이 많이 나타난다. 특징적으로 자진 진양이 비교적 많이 쓰였으며, 사설이 다른 것들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나 이것을 서편제의 고유 흔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바탕을 정립한 정응민이 이동백이나 김찬업 등 중고제/동편제 명창에게서도 많은 소리를 배웠기 때문이다. 이 소리는 조상현과 정권진의 아들 정회석이 이어가고 있는데, 특히 정회석은 강산제의 수궁가를 많이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4) 춘향가(春香歌)


① 개관 : 춘향가는 모든 바디의 판소리 사설 중 가장 길게 짜여 있으며, 그에 관한 기록 역시 가장 먼저 발견되고 있는 소리다. 특히 여성층에서 많이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도 널리 성창되고 있는 바탕 소리이기도 하다.


② 춘향가의 현존 전승계보

    

  ②-1. 동편제


    ㄱ. 박봉술 바디 : 송만갑 → 박만조 → 박봉래, 정정렬 → 박봉술

           박봉술 바디는 강도근 바디, 박녹주 바디와 함께 현존하는 유일의 춘향가로 전해진다. 특히 필자는 강도근, 박녹주 바디의 춘향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으므로(특히 강도근의 춘향가는 사설이라도 구할 수 있으나, 박녹주의 사설은 어디서 구할지 모르겠다.), 동편제 춘향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유일한 바디라고 할 것이나, 현재는 전승이 완벽하게 끊겨 있다. 사설 상으로는 유공렬, 장자백(추정)의 것과 비슷하다고 하며, 후반부의 경우 정정렬의 것과 유사하다.


  ②-2. 서편제

    

    ㄱ. 김창환 바디 : 김창환 → 정광수

           서편제 박유전-정창업, 이날치 계통의 정통 서편제 바디 중 하나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광수가 64년 첫 인간문화재 지정 당시에 보유하고 있던 바디다. 그러나 나는 정광수의 춘향가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으므로 섣부르게 뭐라 하기는 어려우나, 김연수, 박동진의 바디를 참고할 때, 정정렬 → 김여란 계통의 바디 다음으로 유사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어떤 사람이 전승하고 있는지는 자세히는 알 수 없다.


    ㄴ. 정정렬 바디 : 박유전 → 정창업, 이날치 → 정정렬 → 김여란 → 최승희

           무형문화재로 지정 되어 있음. 박유전-정창업, 이날치 계통을 근간으로 정정렬이 신재효본의 남창춘향가(남자가 부르는 춘향가 사설을 일컫는 것으로 굳세고 웅장한 사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와 기타 동/서편의 사설 등을 참고하여 새롭게 짠 신제 판소리에 속한다. 현재 성창되고 있는 만정 김소희 바디와 동초 김연수 바디는 물론, 박동진 바디 역시 정정렬의 것을 근간으로 삼고 있으니, 현대 판소리 춘향가의 비조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목이 좋지 않았던 정정렬은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창법을 연구했고, 사설 역시 창법에 맞게 변화하였다. 특히 적성가 등의 더늠을 새로 짠 것으로 유명하며, 아니리와 창이 고루 풍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는 現 보유자 최승희를 비롯, 이수자 최정희 등이 전승하고 있다.

    

    ㄷ. 김연수 바디 : 정정렬 → 김연수 → 오정숙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춘향가 중 가장 긴 시간인 8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아주 방대한 소리다. 동초는 춘향가를 새로 짤 때, 정정렬의 것과 김창환의 것을 중심으로 이동백의 소리를 참고하였으며, 사설적인 측면에서는 신소설인 『옥중화』를 많이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춘향의 출생 설화가 들어가 있으며, 제자가 없는 한경석의 더늠을 참고했다는 점, 또한 김연수의 맞수로 알려진 임방울의 더늠 쑥대머리를 차용했다는 점 또한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현재는 현 보유자인 오정숙을 비롯, 이일주, 조소녀 등의 중진들과 이자람 등의 신예까지 두루 전승하고 있다.


    ㄹ. 박동진 바디 : 정정렬 → 박동진

           박동진의 것은 김연수의 것 보다 30분 적은 8시간이 소요 되는 소리로, 역시 정정렬의 사설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비교적 휘몰이와 자진모리의 사용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그 외에는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을 중심으로 음악이 짜여 있다. 역시 박동진이 보유한 다른 바디와 마찬가지로 재담이 많이 들어가 있고, 오리정 이별 대목은 있으나, 쑥대머리 대목이 없다. 또한, 궁자 노래 대신, 정자 노래가 들어가 있으며, 뒷부분이 엇중몰이로 끝나지 않고 중중몰이로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ㅁ. 김소희7) 바디 : 송만갑, 정정렬 → 김소희 → 안숙선, 신영희

           무형문화재로 지정, 보존되고 있는 판소리이며, 현재 널리 성창되는 계열 중 하나이다. 역시 김소희 바디 역시 정정렬의 바디를 가장 큰 근간으로 삼고 있고, 그 외에는 송만갑의 것을 가장 많이 참고하였는데, 그것은 정정렬의 것이 이야기 적으로는 매우 뛰어나고, 송만갑의 것은 세세한 사설이 엄정하고 점잖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설이 점잖다. 지금은 준 보유자인 신영희와 가야금병창 보유자 안숙선을 비롯, 김소희의 고명딸인 박윤초 등이 전승하여 부르고 있다.8)


  ②-3. 강산제


    ㄱ. 정응민 바디 : 김세종 → 김찬업, 이동백, 정재근 → 정응민 → 정권진

           정응민 바디는 다른 강산제 바디와는 달리 서편제를 근간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편제 명창인 김세종의 것을 근간에 두고 있다. 하여 혹자는 김세종 바디라고도 하나, 실제 순수하게 김세종의 것만을 전수 받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가장 널리 성창되고 있는 춘향가로 임권택 감독의 99년 작인 춘향뎐의 배경 소리로 나왔던 것이 바로 정응민 바디의 춘향가다. 사설이 점잖고, 토막소리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춘향가 예능보유자 성우향의 소리가 정응민의 것인데, 실제 이수자 및 준 보유자 등이 정해지지 않고 정보가 없어 정확히 이것이 무형문화재 지정 소리가 맞는지 모르겠다. 무튼, 현 보유자 성우향을 비롯하여 성창순, 조상현 등이 이를 전승하고 있다. 다만, 본래 강산제의 신연맞이는 세마치로 부르는데, 조상현 만은 자진모리로 부른다.9)


5) 심청가(沈淸歌)


① 개관 : 심청가는 본래 매우 대접을 받지 못하는 소리라고 한다. 그 이유는 내용이 슬퍼서 높으신 양반들이 듣기 거북하다, 뭐 이런 이유였는데, 지금은 그 사설의 문학적 해석이 새롭게 대두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리다.


② 심청가 현존 전승계보


  ②-1. 동편제


    ㄱ. 김연수 바디 : 송만갑, 정응민 → 김연수

            김연수는 심청가와 흥보가를 송만갑에게서 수득하였다고 하였으나, 역시 송만갑의 것과 완벽하게 동일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필자에게 강도근 바디 심청가의 정보가 없으므로, 송만갑의 것을 추정할 수는 없으나, 다만, 정응민의 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으므로 정응민의 심청가를 제2저본으로 삼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또한 신소설인 『강상련』의 내용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강상련』은 명창 심정순이 구술하는 사설을 이해조가 산정하여 연재한 신소설인데, 심정순은 충청도 출신의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어떤 판제의 소리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중고제10) 소리를 하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뺑파의 생김새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으며, 이는 박동진에게도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박동진이 김연수의 것을 차용하였거나, 아니면 중고제 심청가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사설일 수 있다.11) 현재는 오정숙 등이 부르고 있다.


  ②-2. 서편제

    

    ㄱ. 김채만 바디 : 김채만 → 박동실 → 한애순, 한승호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디이며, 보유자는 한애순이다. 한애순은 박동실의 문하에서 서편제 소리를 배웠으며, 박동실은 김채만 제의 소리를 보유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목이 꺾였기 때문에 한애순에게는 그냥 사설만 전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애순의 심청가는 한애순이 직접 작곡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애순의 것은 부침새와 시김새가 정교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애순과 가장 소리를 유사하게 하는 이는 역시 같은 계열의 한승호인데, 한애순의 소리는 녹음이 남아 있고, 한승호는 완창 필름이 남아 있어 들을 수는 있지만, 이 소리를 전승하고 있는 사람이 매우 적다.


  ②-3. 강산제


    ㄱ. 정응민 바디 : 박유전 → 정재근, 이동백 → 정응민 → 정권진

            강산제 심청가는 거의 서편제의 것과 유사하여 혹자는 강산 서편 소리 심청가라고도 한다. 역시 정응민이 정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상, 이동백의 영향은 매우 적은 것으로 보인다.(유력한 중고제 추정 심청가인 박동진의 것과 닮은 점이 매우 없다.) 서편제의 것에 비해 부침새가 분명하고, 시김새의 비율이 적은 편인데, 이는 강산제 소리 전반의 전체적인 특징이다. 특히 심봉사 개안 대목이 매우 잘 짜여져 있어, 심봉사 개안은 이 바디의 명창들이 많이 부르는 눈 대목으로 유명하다. 심봉사가 다른 바디에 비해 매우 점잖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보유자는 성창순이다. 정권진 이후에는 보유자 성창순을 비롯, 前 보유자 조상현12) 등을 필두로, 윤진철, 정회석(정권진의 아들) 등이 이어가고 있다.


  ②-4. 중고제


    ㄱ. 박동진 바디 : 이동백(추정) → 김창진 → 박동진

            박동진 바디는 현존하는 유일한 중고제 소리로 추정된다. 김연수의 것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김창진은 중고제의 명창 김창룡의 동생으로 아편 중독자였다고 하며, 동편제에 가까웠던 김창룡과는 달리 서편제와 비슷한 중고제를 구사하였다고 한다. 김창진은 특히 진양을 느리게 하였다고 하는데13) 이를 일컬어 ‘삼공잽이14) 진양’이라고 하며, 박자 수는 36박 이다.15) 박동진 역시 심청가에서 진양을 할 때에는 삼공잽이 진양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인다.16) 김창진이 단순히 집안의 가전소리를 바탕으로 소리를 하였는지, 아니면 친분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동백에게도 배운 것인지는 다만 추정할 뿐, 사실을 알 수 없다. 다른 바디 보다 심봉사 내력에 대한 부분이 길게(심지어 심봉사의 아버지를 ‘심준’이라고 한다.) 짜여 있다.17) 심봉사가 가장 방정맞게 나오는 창본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는 이수자 김양숙을 제외하고는 전승자가 없다. 


                                                                                                                                                                           

1) 보통 ‘마당’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명창 박동진(朴東鎭 : 1916~2003)은 “본래, 남사당놀이나 줄타기와 같이 바깥에서 하는 놀이는 ‘마당’이라고 하나, 산조, 병창, 판소리와 같이 옥내에서 하는 것은 ‘바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2)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가 고쳐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명창 정광수(丁珖秀 : 1909~2003. 本名 용훈榕薰), 전인삼(全寅三 : 1962~) 등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적벽가는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이 없고, ‘군사설움(군사서름)타령 대목’부터 ‘새타령 대목’까지 밖에 없었다고 한다.(일컬어 『민적벽가』라 했다고 함.) 또 명창 박동진은 ‘군사설움타령 대목’부터 끝 부분인 ‘조조가 관우에게 비는 대목’까지를 일컬어 화용도라 했다고 증언하였는데, 이를 보아 『민적벽가』라고 불린 것이 신재효가 개작하기 이전의 적벽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3) 판소리에서 명창이 스승으로부터 전승하여 한 마당 전부를 절묘하게 다듬어 놓은 소리. 

 

4) 혹은 『흥보 박타령』이라고도 한다. 놀보가 박을 타서 패가망신하는 대목까지는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근대 이후, 여자 명창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소리가 지나치게 난잡하여 그리 된 것이라 한다. 호남 방언으로는 『박탄가』라 한다고도 한다.(명창 박동진의 증언) 

 

5) 딱딱하고 남성적인 성음으로, ‘쇠망치 같은 소리’로 비유된다. 목에 힘을 주어 껄껄하고 텁텁한 느낌의 성음을 말한다. 뒷 성음이 길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6) 수궁가는 완벽한 정통 서편제의 것은 남아있질 않다. 순수하게 박유전-이날치로 이어진 서편제의 계보는 조선 말, 김채만이 이었으나, 김채만 계통의 전승자인 한승호 역시 심청가와 적벽가를 제외하고는 송만갑 계통의 소리를 많이 배웠으므로, 완벽히 서편제의 것이라 하기 어렵다. 하여 동편제를 제외하고는 박유전-정재근 계통의 강산제 소리가 유일하다. 

 

7) 만정(晩汀) 김소희(金素姬) : 1917~1995. 판소리를 예술적 경지로까지 승화 시킨 명창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시, 서, 화, 창, 악에 두루 능하였고, 1945년, 남편 박석기(朴錫基. 거문고의 명인)와 함께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現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의 전신인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설립하여 많은 젊은 국악인의 물적, 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만정의 사설은 지나치게 진부하고, 예술에 집착하고 있으며, 지나치게 유교 덕목에 얽매인 것이 많아 판소리의 풍자적인 재미를 저하시켰다는 평도 있다. 만정은 본래 송만갑에게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박동실과 정정렬에게도 조금 배웠으며, 해방 이후 정응민, 김여란, 정권진, 김연수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 심청가와 춘향가, 흥보가는 그녀가 새로 짰다. 5대가 중, 수궁가와 적벽가는 특별히 즐겨 부르지 않았다. 천구성의 청아한 성음이 일품이었으며, 70년대 판소리 여류 명창 3인(박녹주, 박초월, 김소희)의 시대를 선도하기도 하였다. 

 

8) 혹자는 여기에 오정해를 추가시키는데, 오정해의 소리는 상기한 명창들과는 그 급부터 차이가 나는데다가, 마지막 제자라는 타이틀도 실상, 제대로 얻은 것이 아니므로 패스한다. 

 

9) 신연맞이 대목을 세마치로 부를 때에는 변학도가 거들먹거리는 탐관임을 부각하는 것이라고 하며, 자진모리로 부를 때에는 춘향을 보고 싶어서 안달 난 모양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10) 중고제(中高制)는 충청도, 경기도 일대의 판소리 유파로 비동비서(非東非西 :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니다.)라 하나, 현재는 그 전승이 끊겨 있다. 다만, 명창 김창룡과 이동백의 녹음이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파악할 뿐이며, 가전의 중고제 소리를 보유하고 있는 심화영 명창이나, 중고제 명창 김창룡의 동생으로 서편제와 중고제를 섞어서 했다고 하는 김창진의 소리를 이어 받은 박동진의 소리로 약간이나마 가늠할 수 있다. 심정순을 중고제 명창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일단, 그 출신지가 충청도인데다, 심화영 명창의 집안과 같은 성씨이기 때문이다. 

 

11) 이 점은 이해조의 『강상련』을 직접 찾아보아야 알 수 있을 듯하나,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12) 조상현은 임방울 이래 다시없을 남자 천구성(공명이 적절히 풍부한 성음. 남자의 천구성은 여유롭고, 여자의 천구성은 애원성이 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명인이라고도 불리운다. 혹자는 그 성음을 일컬어 수리성이라 하나 내가 보기에는 공명이 풍부하면서도 떨림이 적고, 소리를 쭉 뻗어 올리기 보다는 음을 감아올리는 듯 고음을 구사하고 있으므로 천구성에 가깝지 않은가 싶다. 조상현은 1998년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를 맡았다가 금권심사 문제가 붉어져 고소를 당했으며 그로 인해 2007년, 보유자 자격을 박탈당하였다. 조상현은 현존하는 명창 중, 강산제 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아는 명창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풍부한 성량과 좋은 성음을 타고난 희대의 천재 소리꾼이다. 또한 재담과 걸쭉한 육담도 적절히 구사할 줄 아는 명창이다. 특히 조상현이 부르는 심봉사 개안 대목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부분이다. 

 

13) 김창진과 김창룡 형제의 아버지는 김정근이며, 김정근은 진양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성옥의 아들이다. 김성옥은 또한 송흥록의 매부로 알려져 있는데, 송흥록이 당대에 진양조로 이름을 날린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한다.(혹자는 송흥록이 진양을 창시한 것이라고도 한다.) 김창진이 삼공잽이 진양을 구사한 것은 이러한 집안의 가전 소리에 매우 밝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14) 판소리에 대해 다룬 몇몇의 고문을 보면, ‘산궁접이’. ‘산궁잡이’, ‘산공잡이’, ‘삼공잡이’, ‘삼공재비’ 등의 말이 등장하는데 이 말을 가르킨 것이 아닌가 싶다.

 

15) 명고 김동준(1929~1990)과 김득수(1917~1990), 한일섭(1929~1973), 송영주(1902~1992) 등은 이러한 박자 구조에 따랐으며, 하여 박동진이 구사하는 진양조를 박자 걸림 없이 잘 쳤다고 한다. 그러나 동 시대의 명고수였던 김명환(1913~1989) 등은 진양은 24박이 원박이므로 36박 진양은 없었으며, 소위 ‘삼공잽이’라고 하는 장단은 늦은 중몰이 장단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18박이 한 배의 원박이 된다. 그러나 박근영 명고(송원고법연구회 회장.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박봉술 바디 적벽가 이수자)는 진양의 원박을 24박으로 정의 할 경우, 다른 장단은 소리꾼에게 고수가 맞춰주게 되지만, 진양 장단만은 소리꾼이 고수에게 맞춰줘야 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므로, 진양의 원박은 24박이 아니라 6박이 맞는 것이라고 하였다. 만일 진양을 6박으로 칠 경우, 한 배의 원박을 12박으로 삼는 자진진양과, 24박 진양, 36박 진양이 무리 없이 구사될 수 있다하므로, 필자 역시 박근영 회장의 이론을 따른다.

 

16) 물론 박동진은 심청가 뿐 아니라, 자신이 보유한 다른 바탕에서도 종종 삼공잽이 진양을 구사하였다.

 

17) 박동진은 심청가의 주인공은 심청이 아니라 심봉사와 심청 두 사람이라 한다. 

                                                                                                                                                                           

 

<참고자료>

- 故 박동진의 대담 증언

- 한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판소리 다섯마당 전집

- 명고 박근영의 방송 대담

-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승호 적벽가 해설

- 국립문화재연구소 판소리 유파 연구

- 국악 애호가들의 음반 해설

- 기타 백과사전 및 신문기사


덧글

  • 비안네 2008/04/12 23:05 #

    이걸 보니 생각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성무일도'라고 시간에 맞추어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에게는 의무지요. 여기에 보면 찬미가라고 꼭 종교노래가 들어갑니다. 라틴어판에서는 그대로 시라는데... 한국어로 이를 번역하자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국 찬미가를 3/4/5조로 번역(창작?)했지요. 가령.. '우리의/구세주신/예수님이여. 높으신/아버지의/말씀이시며' 하는 식으로요.

    서울대 출판부에서 북유럽의 시가인 '에다'를 번역, 출판했는데... 번역자가 서문에 쓰기를, 번역하면서도 판소리 운율을 도입하려고 많이 애썼다... 하더군요.

    우리말 시가나 노래에 대한 연구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단 생각이 듭니다.
  • 푸른화염 2008/04/13 14:34 #

    비안네//안타까운 노릇이지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판소리가 당대에 팔도에서 유행하는 소릿조를 많이 섞어 놓은 소리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심지어 창법가지도..(나중에 심도 있게 다루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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