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세기를 강타한 이념은 누가 뭐라 해도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소셜리즘(Socialism)이다. 크게는 내셔널리즘과 소셜리즘의 충돌, 그리고 내셔널리즘 내부의 충돌, 소셜리즘 내부의 충돌은 곧 19~20세기 세계사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두개의 키워드에 해당한다. 그리고 바로 그 시대를 일컬어 세계는 흔히 모던(Modern)이라 한다. 같은 시대를 일컬어 우리나라에서는 근현대라고 지칭한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근현대도 바로 이 두가지의 화두로 점철되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며, 따라서 이 시기를 살았던 우리의 모든 정치적 습관은 내셔널리즘과 소셜리즘적인 측면을 매개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역사 용어는 특히 이러한 이념들의 영향으로 받아 형성된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해방 이후의 남한 사회는 캐피털리즘(Capitalism)과 내셔널리즘의 결합, 그리고 내셔널리즘과 코뮤니즘의 기형적 결합이 나타나면서 내셔널리즘적인 용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그림 1> 네이버 캐스트 - 인물과 역사 : 박열 (11.02.15 발행) 덧글란 가운데 캡춰
한국사의 역사용어 사용에 대하여 이렇듯 거창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천황' 용어의 사용 문제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조금 더 폭 넓고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나, 지금은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상기한 -ism적 입장의 충돌이 '천황vs일왕' 구도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정확히 '일왕'이라는 용어 자체가 방어적 내셔널리즘 적인 측면에서 사용되었떤 일제 당시의 용어를 빌려온 것이고, 역사 용어에 있어서 반정부 우파 뿐 아니라 좌파 또한 이러한 의식에 입각해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반드시 그렇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소위 좌-우의 구분을 막론하고 한국 기성 지식인의 가장 큰 문제는 일제 시대~해방 전후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지극히 피해망상적인 시각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시각을 일종의 진리로써 강요한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일왕' 용어 사용의 강요, 혹은 주장 역시도 이러한 바탕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구태여 포스트 모던이라는 거창한 용어로 포장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방어적 기제로써의 표현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이 무슨 일을 벌일 때 마다 "일본 문화는 모두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표현이 현대사적인 용어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
일본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한때 제정(祭政)을 초월한 신적 존재를 일컫는 고유 명사인 덴노(てんのう)는 천황(天皇)의 일본어 음독 발음이다. 즉, '천황'이란 일본의 정신적 지도자에 대한 고유명사인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피해 여부를 떠나서 일본 문화의 한 용어로써 존중받을 필요가 있는 용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거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역사를 구축하면서 자신들의 신적인 존재를 일컬어 천황이라는 고유 명사로써 표기한 것 또한 사실이다. 적대적 관계에 있어서 위상을 격하하기 위해 사용된 용도인 '일왕'이란 이러한 개별적 사실 가운데 하나를 우리 임의로 삭제해 버린 것과 다름 없다. 우리는 흔히 정치와 학문의 야합을 공격적인 경우로만 보아왔다. 그러나 내셔널리즘에도 공격적, 방어적이 나뉘어 설명되듯, 이러한 정치, 학문의 야합 역시 방어적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즉, '일왕'이라는 표현을 역사용어 뿐 아니라 현재의 시사용어로써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피해에 대한 일종의 방어 기제가 작용한 '정치, 학문의 야합'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정치와 학문의 야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다.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벌어졌던 각종 의거는 무자비한 테러라는 일본 우익의 표현에 우리는 반박할 수 없다. 무엇으로 반박할 것인가? 문화라는 인류의 기본적 삶의 형질이 만들어낸 사실마저 우리의 입장에 따라서 무시하면서 그 토양 위에 세워진 세계적 공의라는 명목을 갖다 댈 것인가? 더 나아가 일본사에서 광개토대왕을 일컬어 '고구려 적수(賊首)'라고 표현한다면 역시 우리는 반박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천황에 대해서는 일왕이라고 하면서 고대사의 숙적인 중국의 정치적 지도자를 중국인들이 일컫던 그대로 '황제'라고 칭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천황을 일왕이라고 부르자는 주장은 이처럼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장인 셈이다.
일제강점기는 분명히 우리의 피해가 막심하였다. 우리 문화는 말살되다시피하였고, 정치적으로도 어떠한 자유의 보장을 받지 못한 시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 피해로써 사실일 뿐, 그것이 현대의 모든 역사 인식과 정치적, 현실적 인식을 하는 잣대로써 작용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한 독재자의 정치적 보복에 대해서는 진정한 사회를 알지 못한 무지의 발로라고 하면서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피해만을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연구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측면을 다시 살피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만 줄인다.
덧글
오히려 그렇게 정치와 야합하면서 세세한 기표와 표현의 문제에는 식민주의의 잔재를 뿌리친다고 열을 올리면서도, 민주적 여론의 무시, 정치적 자유와 상대성의 불인정, 권위주의 체제에의 향수 등이라는 일제 파시즘의 '진정한 잔재'는 비판하지도 않고 내면화하는 모순이 바로 우리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2. 다만 사람들에게는 한자 자체가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가 특별한 면이 있기 때문에 '천황'이라는 용어가 영 탐탁찮다면, 일본인들이 부르는 덴노라고 불러주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2. 흠, 그러하다면 또한 덴노로 표현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인듯 합니다.
현지어로는 덴노든 천황이든 쓰지만 실상 우리 입장에서는 "왕"인 거죠.
Furher를 총통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 번역한 것이잖아요?
특별히 상관은 없을 듯 합니다.
오히려 천황이라는 말이 한자에 이끌려서 억지로 맞춰져 보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네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번역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현지화 할 것인가, 아니면 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정도의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일본어 한자를 왜 굳이 하필이면 덴노 부분만 그대로 읽어줘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특수한 케이스니 앞으로도 많은 논이가 필요할 듯 합니다.
총통제의 총통은 행정부의 수반으로 국민에 의해서 선출 됩...
.....에에?...(......)
이거 좀 심하게 사족입니다.
일 제국주의자들이야 까일게 워낙 많은데...
뭐 끼어들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지만 예전에 이글루스에서 과거에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이 벌였던 것들이 테러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들이 많았던 것들로 알고 있어서 '테러'에 대한 직접적인 명기의 호오는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자칭 반제국주의 전사들'이 벌이는 각종 테러행위나 아일랜드의 IRA같은 곳에 비해서 그래도 우리나라 독립군들이 최소한 '무자비한 테러'가 아니라는 것에 한표를 던질 수 있다고 보는 것에는 우리나라 독립군들이 '자칭 반제국주의 전사들'처럼 가난한 집에서 아이들을 돈주고 사와서 세뇌시켜서 자살폭탄테러를 시키지도 않고 대놓고 민간인들이 말려들게 했던 것들이 그래도 적다는 겁니다.
장난스러운 가학 행위를 예시를 들었지만, 그 가학 행위를 한 사람이 원인제공자이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원인 제공자가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아니니깐 이 예시는 잘못된 예시 같습니다.
그리고 님의 댓글은 뭐랄까요...
디시 연평도 북괴 갤러리 측에서 '우리민족끼리'에 낚시를 걸어서 게시판 관리자가 북으로 가게 되어서 항간에는 '이 자식 요덕행이다!'라고 했을 때 누군가가 이런 식의 글을 썼었죠. '디시의 잉여들 때문에 저 [죄없는] 게시판 관리자와 가족들이 무슨 꼴이냐'라는 식으로요. 솔직히 죄송하지만, 님의 댓글에서 그와 유사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현대의 '테러'가 그다지 인정을 못 받는건 '지배계층'과 상관이 없는 일반대중을 노렸다는 것에 있는데(예컨데 체첸 반군의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을 벌였던 것이나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이 애꿎은 민간인들까지 말려들게 한다던가) 그에 반해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 과연 저런 식의 '테러'를 얼마나 했겠나 싶습니다.(뭐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역사적으로 세계의 왕들과 다른 전통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도, 전후 인간선언한 뒤로는 그저 평범한 입헌군주국의 군주에 불과하죠.
일본사를 이야기 할 때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 할 때는 스페인 국왕, 카타르 국왕 처럼 '일본 국왕' 쪽이 더 일반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어느 나라 국왕도 현재 저런 특혜를 받진 못하고 있습니다.
태국 국왕의 직함은 A4용지를 가득 메울만한 수준이지만 간단하게 국왕이라고 표기하죠.
영국이나 스페인, 기타 입헌군주국은 물론이고 아랍권의 기름왕족들도 걍 국왕입니다.
국사시간에는 늘 일제의 침략을 슬기롭게 극복한 어쩌구 저쩌구... 이런식의 과도한 반일주의, 반일본주의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병적 현상 같네요. 어려서부터 그런 반일 세뇌를 당하고 자라났으니, 합리적인 생각 따위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극렬 반일주의자이며 현상금 30만 달러가 목에걸린 이승만은 그렇다 쳐도, 박정희는 왜그리 반일뽕을 남용했는지 말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잘못 때문에 외침을 막지 못했으니, 조선의 잘못도 일정부분 있는데 그런건 가르치지 않고 그저 잔인한 일본놈... 늘 이런 식이었으니...
KittyHawk//명성황후에 관련된 기술이나 생략은 잘못된 것이 맞습니다만, 세도정치하에서의 문란상이나 대원군 정권의 말기적 행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충실하게 적혀 있다고 사료됩니다만.
그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라는 소리 할수 있게 될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원복 교수도 그렇게 표기했지 말입니다.
아닐까요? 사실 하늘의 황제 나부랭이라 실권 따위는 없는 천황에게 일본의 왕이라고 붙여주는
게 권력적인 면에서는 더 존대해주는 것도 같고... 과거에 외부로부터 일왕 소리는 대개 쇼군이
듣지 않았나요.
(호머 심슨 같은) 나 : 아, 그러세요, 천황님... 근데 어느 라면집이 푸짐하게 나오나요?
[Président든 President든 대통령이라 표기하고 Prime Minister든 内閣総理大臣이든 수상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예로 드신 용어들은 대체적으로 현대 사회에서도 그 권한이나 직분이 유사하다고 판단됩니다. 이들의 권한과 직분 사이에 일본 천황과 같은 일종의 특수성이 있는지 싶군요.
용어 사용에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외교적이나 학술적인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일반용어까지 국왕의 호칭에 고유명사를 사용해야할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세계 각국에는 아직도 군주제나 입헌군주제 국가가 많지만 그들의 정치 사회적 특성이 어떻든 군주제 국가라고 부를 수 있는 규모와 사회 통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그 국가 수장의 일반적인 명칭은 왕, 또는 여왕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야기하고 있는 고유명사의 일반명사 표기는 말씀하시는 일본의 특수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영국 여왕의 공식명칭이 Her Majesty Queen Elizabeth II of the United Kingdom이지만 공식석상이 아닌한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왕의 공식명칭인 日本国天皇 역시 공식석상에서 언급되는 공식명칭이지 일반적으로 쓰이는 호칭으로 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영국여왕이란 호칭과 마찬가지로 일본국왕이란 호칭 역시 격하나 비하의 의미가 아닌 해당 국가의 왕을 일컫는 일반적인 호칭으로 여겨야한다고 봅니다. 천황이란 호칭이 권한과 직분의 특수성으로 일반명사가 되어야한다면 영국 여왕 역시 국교회의 수장이며 영연방의 대표이니 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라는 길디 긴 공식명칭이 일반화되어야할 것입니다.
백범//빨갱이라는 용어의 정의 자체가 좀 틀리신 것 같습니다만. 그거야말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뿌리깊은 반공주의에 의한 세뇌가 아닌지 싶군요. 공산주의라는 것 자체가 나쁘다기 보다는 한국전을 일으킨 북한의 태도가 잘못이겠지요.
- 전근대 사회의 전제군주는 많은 경우 종교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에서 그들을 모두 황제 아니면 왕으로 부릅니다. 일본만 다를 이유는 없습니다.
- 일본은 공식적으로 비한자권 언어에 대해 '천황' 칭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건 개항 이래 지속적이며, 심지어 일본어로 '황제'라 칭한 예도 있습니다.
- 2차대전 이후의 천황은 제도적으로는 흔한 입헌 세속군주일 뿐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천황을 그냥 '일본 왕'이라고 지칭하는 데 하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일본 역사를 서술할 때처럼 천황이 용어로 필요할 때야 있습니다만, 그 때 쓰면 됩니다.
우선, 전근대 사회의 전제 군주가 많은 경우 종교의 지도자였던 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다못해 조선 시대의 왕도 하늘과 인간의 중계자로 인식되었고, 중국의 황제도 물론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제정일치적인 의미의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중국의 예제에 천지신에 대한 제사가 황제의 권한이며 의무로 표기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측면에서 이들은 명목상 종교적 지도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정치적 지도자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고 보는 것이 함당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헌데 일본의 천황은 막부시대 이후로 정치적 실권자의 측면보다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성향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중국의 황제나 러시아의 짜르, 우리의 왕과는 차이가 좀 난다고 생각됩니다만, 혹여 잘못알고 있는 것이 있거든 지적해 주시기를 정중히 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의 천황이 제도적으로 흔한 입헌세속군주일 뿐이지만, 문화적인 측면, 일본 국민의 의식적인 측면에서는 일반적 입헌군주와는 다소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혹여 제가 잘못알고 있는 것이 있거든 더 지적해 주시기를 정중히 청하는 바입니다.
'황제'와 '왕'은 봉건 질서에서의 위계 차이이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그 구별도 무의미합니다. 따라서 '일본국왕'은, 아키히토(今上天皇) 또는 전임 쇼와천황을 한국에서 일반적인 용도로 지칭하는 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한자문화권인 우리가 천왕이라 불러줘야 될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일본 군주를 천황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꼭 그를 격하하려는 의도 때문은 아닙니다.
더불어 천황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꼭 그를 격하하려는 의도 때문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만,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일본 천황이라고 칭했다고 무개념하다 욕 먹는 현실이 제 상상속에서만 만들어진 일은 아닐텐데요?
>전제국가의 군주로써 천황은 의미가 있고, 종교적 지도자로써 혹은 정신적 영역으로써의 천황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말씀인데
그런 말 아닙니다.-_-; '천황'이라는 호칭은 천황이 종교적/정신적인 존재로 간주되기 훨씬 전에 생겨나서 쓰이던 호칭이라는 얘기죠. 천황 호칭은 중세 이전부터 존재했는데 천황을 신격화하는 국학과 국가신도의 발생은 기껏해야 18세기 이후의 일 아닙니까.
>일본이 써온 고유한 명칭이거니와, 동시에 가장 가까운 시대에 확립된 천황의 개념과 등치되는 용어로써 왕은 적합치 않습니다.
헤이안 시대의 천황이 '왕'이나 '황제'와 다른 특별한 무엇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천황, 덴노는 명백히 일본 고유의 신도와 종래의 정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요소로써
천황/덴노는 일본 고유의 표현이 맞지만 국가신도는 일본 고유의 것이라기 어렵고 제국 성립 이래의 신격화는 종래의 정치 과정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죠.
'천황'과 '왕'을 상하위 개념으로 여기고 일본 군주를 격하하기 위해 천황 대신 일왕이라고(심지어는 '왜왕'도-_-;) 부르는 사람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그런 견해가 존재한다고 해서 일본 군주를 천황/덴노가 아닌 다른 표현으로 부르는 것이 반드시 그에 동조하는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이런 얘기까지 새삼스럽게 꺼내야 하는 건가요.-_-;
1. 대개 - 특히 - 동북아시아에서 황제, 왕의 의미는 정치적 지배자임과 동시에 하늘과 인간의 중계자로써 인식된 것은 사실입니다. 황제(왕)를 하늘로 등치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대개는 제정일치사회에서 제정분리사회로 넘어오면서 하늘과 인간의 중계자로서의 이미지나 권한은 약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 천황은 그 의미 변천의 구조가 반대에 해당합니다. 신도가 성립되기 이전인 헤이안 시대 천황의 의미는 정치적 지배자의 성격이 강했지만, 18세기, 고가쿠 천황 이후 성립되기 시작한 천황의 의미는 정치적 지배자가 아닌 하늘과 인간의 중계자, 혹은 신성한 존재로써의 의미로 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 국교회의 대표자이기도 하지만, 영국 국교회의 성립은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여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영국민의 정신적 구심적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 존재의 신성성은 강조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헌데 일본은 다르지 않던가요?
2. 첫문단에서 말씀하신 '~기껏해야~' 부분과 두번째 문단에서 말씀하시는 솔직히 답변을 읽으면서도 뜨악할 지경이로군요. 그렇게 치면 조선의 왕이라는 호칭이 가지는 의미도 중국 제후의 그것과 다름이 없어야겠지요. 헌데 아니지 않습니까?
3. 국가 신도가 일본 고유의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온건가요? 다른 나라의 그것을 채택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충분히 일본화가 되었고, 18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3백여년간 그 의미는 변형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를 살려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지?
4. 그런 견해가 있다고가 아니라 그런 견해나 무의식이 상당한 범위로 퍼져 있다는게 문제겠지요. 일왕이라는 호칭이 천황을 격하하려는 의도 때문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용어 사용의 표의, 대다수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격하와 비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young026님께서야 현명하시니 일왕이라는 표현의 가치중립성을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대다수의 민중이 그 표현의 가치중립성을 이해하고, 그 가치중립적 측면에 기인해 일왕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생각하시나요? 저야말로 이미 만연한지 오래된 일왕 용어 속에 담긴 비하의식과 피해의식을 새삼스럽게 꺼내야 할지 의문이로군요.
정교 모두를 총괄하는 현대 군주가 일본 국왕만 있는건 아닙니다. 태국 국왕도 세속의 지도자인 동시에 불교의 법왕 개념을 함께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태국 국왕은 '국왕'이라고 칭하지 프라밧쏨뎃이라 부르진 않습니다. (애초에 그 긴긴 직함 다 쓰려면 종이가 꽤 필요하겠지만)
고유명사로서 덴노라는 단어는 존중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칸이나 짜르, 혹은 카이사르와 같은 선상에서 쓰이는거니까요.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 세계의 입헌/전제 군주들의 공식적인 호칭은 국왕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일본에게만 특혜를 줄 필요가 있냐 이겁니다.
세속 군주로서의 호칭 문제는 스페인이나 스웨덴 국왕과의 형평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고,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호칭 문제는 태국 국왕이나 이슬람권 국왕들과의 형평성을 생각해야죠.
그럼 일본 사람들은 한국의 대통령을 뭐라고 부릅니까? DAE-TONG-RYUNG이라고 하나요?
그리고.. 사실 현재도 모든 입헌군주국의 군주를 왕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언론에서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모나코는 '대공', '후작', '공작'과 간혹 '왕', '국왕'이라는 칭호가 혼용되고 있죠. 반면 말레이시아나 브루나이처럼 술탄이 있는 국가도 정서상 잘 알지 못하면 그냥 '왕'으로 통일해 부릅니다. 결국 입헌군주국 군주의 칭호는 어떤 일관된 기준이 있다기보다, 한국에 해당 국가의 정보가 알려진 정도와 한국어 언중의 언어 관습(또는 언어 정책)에 많이 의존하는 듯하네요.
서구권 국가에서도 다른 입헌군주제 군주들은 왕으로 부르는데 반해 일본의 군주는 Emperor 로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한제국 황실은 나라가 망하면서 일본 황가로 편입되었고, 제정러시아의 황제는 혁명으로 와해되었죠, 독일 제국의 황가는 패전으로 인해 황태자가 황위를 포기하여 소멸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나라가 망했을 뿐 황실은 존속해있었고, 게다가 국가와 민족(인민), 황(왕)실이 일견 공통점을 가지지만 저 셋이 절대 같은게 아니라는걸 생각해본다면 제국 일본이 멸망했다고 하여 천황이란 이름이 사라져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p.s : 저 개인적으로는 외려 한제국 황실이야말로 왕으로 표현하는게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19c말 ~ 20c 연간에는 최대 총 21명의 사람이 자신을 Emperor 라고 칭했다 할 정도로 황제란 명칭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한제국 황실을 보면 어디 하나라도 '황제' 라는 이름에 적합한 부분이 없다 싶더군요... 실제로 한제국 황실은 유일하게 독일 제국에서만 '황실' 로 인정받았다는걸 생각해본다면, 외려 자국의 '명칭 인플레이션' 을 걱정하는게 더 적절하지 않나 싶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