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930년대 판소리 명창 녹음 선집Ⅱ (by. 진성당거사) 감상 후기 (2) └예부藝部


  1910~1930년대 판소리 명창 녹음 선집Ⅱ (by. 진성당거사) 감상 후기 (1)

  1910년대~1930년대까지 활동한 명창 가운데 동편제 가객으로써 송만갑 만큼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물은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배분으로써 유성준(劉成俊, 1874~1949)이나 이선유(李善有, 1872~?)를 들 수 있겠지만, 이선유는 녹음도 많지 않으며, 그나마 그 소리의 계보를 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제자도 많지 않을 뿐더러, 이선유의 소리에 대한 증언 자체도 굉장히 적은 편이다. 유성준은 어떠한가? 역시 녹음 횟수가 상당히 적은데다가 그 제자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내려오는 증언만이 존재할 뿐이며, 남아 있는 녹음과 비교해 보면 그 증언 조차도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는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서편제 스타일이 가미가 되었다고는 해도 제대로 된 동편제 소리의 진수는 송만갑의 그림자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지난 시간에는 송만갑 본인의 소리를 통해 동편제 소리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분석해 보았는데, 이번 시간에는 그 제자들의 소리를 분석해 보도록 할 것이다.

  (2) 송만갑의 전인들

  대개 전근대 예술의 전래가 가족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과, 중고제의 김성옥-김정근-김창룡, 김창진 가(家), 역시 중고제의 심정순 가(家), 강산제 보성소리의 정응민 가(家)의 실체를 생각해 보면, 송판 동편제의 법통 또한 그 가족에게 전래되어 주로 이어져 내려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구태여 여타의 사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송만갑 자신이 아버지 송우룡에게 소리를 배웠고, 송우룡은 역시 아버지 송광록에게 소리를 배웠음을 생각하면 송만갑의 소리 또한 그 자식에게 전해졌음을 생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송만갑에게는 실제로 송기덕(宋基德)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송기덕의 소리는 많이 녹음되어 있지는 않지만, 몇가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외에도 송만갑은 제자를 제법 둔 편이었는데, 그들 가운데에서도 수제자로 공인되어 있는 장판개(張判介), 김정문(金正文), 그리고 이들 둘에 비해서는 명성이 떨어지며 지금 현재 그 인적 사항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박중근(朴重根)의 녹음이 남아 있다. 본 편에서는 이들 네 사람의 녹음을 한번 살펴 보겠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녹음으로는 송기덕의 책실향 춘향가와 장판개의 제비노정기, 김정문의 홍문연, 박중근의 적적공방 등이다.

  송기덕 唱 책실향 춘향가(1913) : 1960년대 이후의 판소리만 들어온 이들에게 책실향 춘향가라는 제목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요즈음의 제목으로 치면 '이도령이 춘향에게 이별차로 나가는 대목'이라고 하면 옳을 것으로 보인다. 소리의 끝목이 짧고 음절의 앞부분을 강한 억양으로 내뱉는 점, 템포가 다소 빠르게 설정되어 있는 점은 동편제 소리의 전형적 특징이라고 생각되며, 장단은 중모리 장단이되, 다소 빨리 친 것이 아닌가 싶다. 근래에 치는 중모리 장단이 1박과 5, 6박, 9박으로 강~중강~강세를 두는 것과 비교해 보면 첫박과 9박에만 중강 정도의 강세가 가해져 있고, 해(解)에 해당되는 10~12박까지는 거의 손바닥으로 짚어주는 수준 이상으로 사용되지 않는 특징을 찾아볼 수 있겠다. 이 녹음을 남긴 송기덕은 1896년, 송만갑의 차남으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상이 기록된 호적상의 내용을 사실로 본다면, 이 녹음을 남겼을 때,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18세(만 17세). 소년 명창이다. 소리의 톤이 상당히 높게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내고 있는 청의 문제이기 보다는 변성 이전의 목소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이 나이를 즈음하여 남겨진 명창의 녹음이 없고, 임방울의 첫 녹음도 그가 20대, 변성 이후에 남긴 것이므로 변성 이전의 목소리를 찾기 어려운데, 제법 이채로운 것이 사실이다. 송기덕이 이후로 계속 소리에 정진하였다면, 아버지와는 또 다른 소리로 유명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후의 녹음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 송기덕은 이후 고등계 경찰 노릇을 하였다. - 어려서인지 계면조의 길을 아주 잘 잡아서 가고 있는데, 아버지와 비교하여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나, 그 맛은 충분히 다르게 내고 있다. 후기할 장판개나 김정문, 박중근의 소리는 모두 변성 이후, 나름 소리에 일가를 이루었을 시점에서의 녹음이고, 장판개, 김정문의 경우에는 아편의 영향이 성음에도 다소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송기덕의 녹음은 막힘없이 올라가는 고음과 아편의 영향이 거의 없다고 믿어지는 마르지 않은 소리 색이 재미있는 녹음이다.

  장판개 唱 제비노정기(1936) : 현전하는 흥보가의 제비노정기는 3가지 정도의 갈래가 있다. 우선 중중모리(혹은 자진 중중모리) 장단으로 짜여진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로 시작하는 A형(현전되고 있는 흥보가 바디 가운데 강도근-전인삼 계열의 전승을 제외한 모든 바디가 해당), 자진모리 장단으로 짜여진 '흥보 제비가 나온다. 흥보 제비가 나온다.'로 시작하는 B형(김정문-강도근-전인삼으로 이어지는 강도근 바디), 자진 중중모리 장단에 '앞남산 지내고 밖남산을 지내'로 시작하는 C형(박봉술 바디)이 그것인데, 장판개의 제비노정기는 C형 제비노정기의 아버지 격에 해당한다. 사실 대다수의 창본에서 보이는 A형의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더늠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B형 또한 장단만 다를 뿐 김창환의 사설과 유사한 것에 비교하여, 장판개의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나의 경우에는 이것이 혹 동편제 제비노정기의 원형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여간, 이 사설이 박봉술에게로 이어져 놀보 제비노정기로 현재까지 전해지고는 있으나, 그 맛은 장판개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장판개의 소리는 상당히 송만갑의 성음이 잘 남아 있다. 음색은 철성 보다는 수리성에 가깝지만, 목을 쓰는 법이나 한 음절에서 내지르는 음의 악센트, 소리 끝목의 처리 등은 송만갑과 거의 같다. 음반 자체의 문제인지, 아니면 녹음 시에 마이크를 다소 멀리 떨어뜨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녹음 자체 내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그 성량 또한 막강한 공력으로 가득해 있다. 그러나 아편의 영향인지 사설의 발음일부가 부정확하고, 고음에서 살짝 늘어지듯 부르는 것이 발견되며, 살짝 양성의 기미가 발견되는 소절이 있다. 그러나 소리를 쥐었다 놓았다 하고 있고, 굉장히 매끄럽게 장단과 선율을 이끌고 가는 모습은 과연 송만갑의 수제자라 할만한 면모를 가진다 하겠다. 고음에서도 막힘이 없다.

  김정문 唱 홍문연(1931) : 홍문연은 김정문의 장기로 알려져 있는 단가로써 다소 빠른 중모리로 되어 있지만, 이동백의 단가에 비교하면 요즘의 속도에 훨씬 근접한 소리이다. 김정문은 장판개와 함께 송만갑의 수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이며, 본 음원을 제공한 진성당거사님이 과거에 본인에게 제공한 바 있는 박타령이 있으므로 함께 비교해 볼 수 있었는데, 박타령은 1928년 녹음이고 이 녹음은 1931년 녹음으로 성음에 더욱 아편기가 심한듯 바싹 말라 있는 양성의 성음이 더욱 발견되는 편이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 녹음에서는 끝목을 다소 짧게 처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동편제적 특징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김채만의 소릿제를 더욱 더 가미하기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아편의 영향이나 체력적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단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평이한 목 놀림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소리를 이어가는 것은 역시 송만갑의 그것과 다소 닮아 있다. 그러나 송만갑의 소리보다는 훨씬 더 통속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다. 다만, 일부 소절의 끝목에서 송만갑 특유의 졸라채어 조이는 듯한 창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박타령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아 그기 송만갑에게서 배운 기본기의 하나가 아니었겠는가 한다. 다만 박타령과 비교하여 많이 떨어진 긴박함은 아쉽다. 고음부에서 송만갑 처럼 쭉 뽑아 내는 것이 아니라, 음의 높이를 미리 정해놓고 그 높이에서 아래 위로 음을 살짝 감아서 내고 있는데, 이것은 동편제적 특징이기 보다는 서편제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며, 동시에 현전하는 강산제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인데, 이것이 김채만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박중근 唱 적적공방(1934) : 박중근의 인적 사항은 실로 미스테리이다. 나의 과문함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지만, 그 인적사항에 대해서 자세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술 자료도, 호적 자료도 아직 내가 자세히 입수한 바가 없고, 그나마 구술 자료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기 보다는 들어본 적이 있다 없다 수준의 것이라서 참고할 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소릿길을 이끌고 나가는 것만 보면 박중근의 소리는 김정문의 그것을 때로는 앞선다고 할 만큼 대단하다. 소위 적적공방이라는 대목은 근래의 '갈까부다'하는 대목인데, 재미있는 것은 중모리~중중모리 쯤으로 여겨지는 이 장단을 치는 소리가 북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들어본 음원에서 송만갑제 소리는 대부분 북 장단에 맞추는 것이 일반인데 박중근의 소리에서 나타나는 장단 악기는 북이 아닌 장고다. '딱'의 성음이 북의 매화점이나 대점, 소점 치는 성음과 완전히 다르고, 조금 더 열려 있어 통을 치는 소리북의 그것과는 다르다. 재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다소 청이 높게 잡혀 있는데 음색은 다소 낮은 편이다. 그러나 고음을 올리는 것에서 김정문보다 더 큰 폭으로 올리는 것으로 느껴지며, 장판개 보다는 다소 다듬어진듯한 성음을 내고 있으므로 조금 더 통속적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소리의 공력 자체는 김정문에 맞먹고, 장판개에 버금가는 실력이 아닌가 한다. 헌데 박중근이 아편을 하였다는 기록이 따로 없지만, 이 소리에서 박중근의 소리는 다소 양성에 가까운듯한 바싹 마른 성음인데, 이 연유가 상당히 궁금하다.

  네 사람의 소리 가운데, 송기덕의 소리가 가장 공력이 달리는 편임은 부정할 수 없다. 우선 막힘없는 고음이긴 하지만, 고음 끝에서 살짝 갈라지는 듯한 모양새가 보이는데, 장판개나 김정문, 박중근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박중근의 소리가 왜이리 묻혀 있었는지 모를 지경으로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송만갑을 기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소릿길이 고제 동편제에 비교해 통속적인 감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판 동편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측면 - 음절당 앞 소리를 크고 분명하게 내지르며, 감아서 내지 않는 창법, 소리 끝목을 짧게 이어가는 것 - 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어서, 이들까지는 동편제 소리의 특징이 그래도 어느정도 잘 보존되어서 내려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박봉술-안숙선의 대를 넘어서면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 되었으니 아쉬운 일이다. 후일 다른 포스팅에서 이에 대해서 자세히 다룰 때가 있을 것이니,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한다.

- 1910~1930년대 판소리 명창 녹음 선집Ⅱ (by. 진성당거사) 감상 후기 (2) 終
차회 예고 : 고제 동편제의 마지막 흔적을 남긴 가객, 이선유



덧글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