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카페 사태 비망록備忘錄


  (1) 2011년 3월 28일, A카페에 가입.

  어려서부터 내 별명은 '신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고려인(왜 내 동갑내기+몇년터울의 사람들은 '고려인'이라는 말을 옛날 사람의 대명사처럼 썼는지 모르겠다. 사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단어인데.), 멧돌, 상감(이건 위인전 표지에 나온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지. 뭐, 위인전 뭐가 있겠나.), 아저씨, 할배 등등등- 거기에 어린시절이 그렇게 밝고 명랑하진 않았으니까 그런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도 밝고 가볍기 보다는 어둡고 우중충하고 무거운 외모를 갖게 되었고.(흐리멍텅하기까지.) 여하간에 그것은 겉모습이 이러했던 이유도 있지만, 원체 옛것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렸을 때 기성품으로 산 한복을 못입게 되었을 때, 한복 입고 싶다고 떼를 썼고(...), '옛날'과 관련된 책이라면 사족을 못썼고, 게임을 한답시고 하는 건 임진록이 아니면 삼국지, 그리는 그림은 수염달린 대감대가리(...), 이순신에 삼국지는 책이 찢어질 때까지 읽고, 역사책, 위인전만 읽었고, 거기에 한국무용에 소리, 풍물 등등등-

  여하간에, 그런 연장선상으로 '한복'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 아직도 이전번의 연애에서 한복 데이트를 못해본 것이 가장 아쉬울 정도이다. - 입고서 거리 활보는 기본, 갓쓰고 부채까지 들고 활보하기도 했었지. 근데 영 혼자 그러고 있으면 눈초리가 신경 쓰이더라. 원래 대인기피증 비스무리-하게 있는터라 사람 시선 받거나 사진 찍히는걸 썩 좋아하진 않는데(그래서 무대생활하기 무지 힘들었다.) 이게 혼자서 당하니 더 못견딜 지경이겠던 것.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봤다. 한복입는 모임이나 한복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 이런 걸. 그러다가 찾게 된것이 '반가의 외출'이라는 사이트였다. 문제는 여긴 상시적이 아니라 명절 중심으로 모이는 정도였고, 내가 찾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찾게된 카페 A. 그게 2011년 3월 28일이었다.

  처음에 가입을 하긴 했는데, 별로 있는게 없었다. 몇몇 사람들의 모임 글이 검색되어서 들어간건데 그것 외에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진다거나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네이버 카페는 거의 단발적 성격이 강하도록 - 꾸준히 운영되는 카페가 10개 중 1개가 채 못될 것다. -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기도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가입했다가 반 실망하고 그저 잠수를 타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 차츰차츰 회원이 늘더라. 그걸 쭉 관망하다가 2011년 연말을 즈음해서 '공연' 이야기가 나왔었다.

  (2) 2012년 5월, A 카페 공연.

  '한복 알리기'를 주제로 하는 공연이었던 것이다. '공연'이라면야 잔뼈가 굵기도 했고, 이미 그런식으로 한복을 알리는 단체도 있는데, 마냥 그들과 같이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얼른 나도 참여하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나름대로 모임에도 나가고 했다. 거의 그때를 전후해서 정기 모임이 활성화 되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내 한복이 어떻다 말은 많이 할 수 있을 지언정, 실질적으로 입을 수 있는 자리가 없으면 카페의 존재 이유는 미비히다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번개, 정기정모는 제법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6월에는 내가 답사번개와 정모를 진행하기도 했던 정도였다. 여튼, 그런식으로 카페는 점점 커져가고 있던 상황. 5월 이후로 아마 회원의 숫자가 1천명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데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어이없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 1천명이 넘는 카페에 제대로 된 규정 하나가 없었다. 그나마 있다는건 등업 요건이 전부. 이런 마당이니 상거래 규제도 안되고-

  한복에 대한 정보 공유랍시고 하는 것도 굉장히 주먹구구였다. 해서 이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래부터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었고, 그나마 입는 사람들 태반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라 카페는 직접 한복을 입는 사람보다도 한복을 짓는 사람, 한복을 입어 볼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시 말해서, '한복을 아직 못접해 봤는데 접해볼 예정인'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카페는 한복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동시에 '한복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이 한복을 접하게끔 하는' 전파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그것이 자의던 타의던)

  기왕에 전파의 역할을 할 것이라면, 조금 더 체계적인 한복 전파, 일상 및 보편화를 위한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되었다. '우리라도 입는'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남들에게도 입게끔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보자는 것. 그것은 이미 5월 공연 당시의 모토가 '한복을 입고도 얼마든지 현대인으로서의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며, 한복은 결코 스크린 속에서,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것이 아니라 '입는 옷'임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당연히 그걸 준비한 카페도 그런 성격을 내포해야 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카페는 지속적으로 카페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여전히 운영의 모토는 '입는 사람끼리 모여서 히히덕대는 친목카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기 시작했고, 운영진은 거의 패닉상태였다. 온라인에선 엄청나게 증가하던 신입회원 증가율은 오프라인 정모나 번개의 참여율 증가까지 이어지는 적이 거의 없었고, 그나마 정모 한번 나온 사람들 가운데 꾸준히 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나오는 사람만 나오는 정모'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뿐이랴? 나이 지긋한 회원들은 애초에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 거기 끼지도 못하고' 점차적으로 모임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회원이 '한복의 일상, 보편화를 위한 사업을 체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사업'이란 금전적 영리를 얻기 위해 하는 그런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두고 짜임새 있게 지속적으로 경영하는 것'으로서의 사업이었다. 뿐인가? 다른 이들도 당시 한복 단체로 쑥쑥 커가던 다른 카페를 의식하면서 그 카페에서 '운영진 모집 공고'를 냈을 때 성토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유로워졌으니 하는 말이지만, 막말로 타 카페에 자기 카페에 '운영진 모집 공고'를 낸 것은 굉장한 실례이긴 하지만, 절차만 잘 갖추었다면, 그 카페와 A카페가 제휴하면서 그곳은 그곳 대로, A는 A대로의 활동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그건 생각도 않고 "우리가 지네 속국이냐?"식의 발언. 그렇다면 그곳에 맞먹을 정도로 활동하도록 해 보던가. 여튼, 그래서 한 건의는 한달이 가도록 운영진 댓글 하나 달리지 않았다.

  그 비슷한 시기를 즈음해서 내가 A카페에서 게시판 하나를 맡아서 칼럼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게시판 지기가 되니까는 비공개였던 회의실에도 들어가보게 되었지. 헌데 가관. 회의실에 새글 올라온 것은 5월 공연 관련된 것 이외에도 거의 없고, 그나마도 한사람이 올린 것이 대다수. 매니저 글은 올라온지 한참이고, 분명히 운영진이면 회의를 할 터인데 회의에 대한 흔적도 없고, 상거래가 문제 되었을 때에도 부매니저라는 인간이 통보식으로 회의실에 규제규정이랍시고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카페에 공개. 규정 조문에 대한 시비는 누구도 없고. 건의사항에 대해서는 누구도 회의실에는 올려놓은게 없다. 한마디로 그냥 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안했다는 소리.

  그런 마당에 건의사항은 계속 빗발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누구도 그 건의사항에 답을 달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정모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내가 진행한 6월 정모는 답사였다. 그것 때문에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덕수궁과 정동길을 카메라까지 들고(뭐 어차피 컴팩트라 무게는 오지게 가벼운거지만) 세번이나 사전답사하고 구조 사진 찍어가고. 헌데 7월 정모는 예상했던 정모장소가 휴관이었더란다. 급작스러운 휴관도 아니고 정기 휴관. 정기 휴관이면 분명히 그 정보를 구할 수 있었을 터이고, 사전답사는 못하더라도 전화 한통이면 확인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건 그냥 정기 휴관. 그리고 8월에는 모 박물관을 갔다는데 거기서는 회원 하나가 "아 정모로 온거 아니에요.^^" 이러고서는 얻어먹을거 다 얻어먹고 돈도 안내고 사라짐. 9월 정모는 무려 회원들로부터 후기에서 '재미없다.' '별로다.'소리까지.

  건의사항한 회원들은 그 사람들대로 불만, 정모 참석 회원들은 그것대로 불만. 거기에 등업이 늦어지기까지 했고, 지역장 스텝들이 고군분투 해도 중앙에서는 그걸 제대로 지원하지 않으니 지역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고.(경남쪽이나 도와줬단다. 명목은 경남에 사람이 많으니까. 그러고서는 어느쪽에는 '그럼 너네도 사람 많이 확보하던가.'라고 했단다. 대체 이건 뭐하자는 플레이?) MT는 장소나 시간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채로 9월 중순을 넘기고 있었고, 결국 10월에 예정되어 있던 MT는 참여율 저조로 저 하늘로 날아갔지. 근데 이 사실이 전혀 공지되지 않고 원 게시글만 수정해서 폐지를 알렸다. 이것에 대해서 회원 하나가 "폐지된건가요?" 물어보니 부매니저라는 인간이 "잘 못알아보시기에 크게 쓰겠습니다."라고 게시글 맨 상단에 '폐지'라고 크게 쓰고. 이거에 대해서 '백지화 된거면 관련한 공지를 따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회원이 답글 다니 '아 생각하시는 운영진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하고 지는 탈퇴해 버렸다.

  매니저? 원래부터 잠수족이었고 번개는 전혀 참석도 안하던 사람에- 건의사항은 엄청나게 쌓였는데 처리 하나 안하고 있고. 그런 사람이었지. 그러다가 부매니저 탈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페 운영 대책 마련해 달라는 사람 앞에 대책은 안세우고 '슬픔과 기쁨이 공존' 운운하면서 아주 감수성 풍부한 공지글 쓰고 또 잠수. 또 뭐라고 하니 이번엔 그냥 사퇴. 그러면서 하는 말은 "나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연락 주세요." 그리고 무책임하게 잠수.
 
  (3) 새 둥지를 찾으려 하다.

  현명한 새는 제가 둥지틀 곳을 안다고 했던가? 상황이 저 모양이니 매니저 사퇴가 거론되기 전부터 나는 모임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수많은 공지를 제기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답은 없으니 갑갑하고. 에라 그럴바에야 차라리 우리가 다른 모임을 만들자- 싶어서 B카페를 만들었다. 난 이 모든 상황에 직접적인 관여는 하지 않았었는데 꼴이 원체 한심하게 돌아가던 터라 나도 가입하게 되었고, 거기서 나름대로 글도 쓰고, 그들과 함게 다른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답도 없고, 의견은 까이기만 하는데 구태여 긁을 필요 있나? 그거 냅두고 다른 활동 하는게 더 답이지. 

  (4) 안녕하세요 사건, A를 살려라.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KBS 안녕하세요 사건이 터졌고, 그 사건 해결을 위해 A카페의 회원 하나와 더불어서 각종 글(이라고 쓰고 하소연이라 읽자.)을 외부에 올렸는데, 그것 때문에 또 회원이 하루에만 수십명씩 우루루. 운영진은 공백 상태고 회원은 늘고- 마침내 A카페는 매니저 양도가 진행되었고, 신입회원 처리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흐지부지된 10월 MT를 대체하기 위한 대규모 번개를 개최하기 위해 비대위체제가 출범했지. 나를 비롯한 B의 회원들은 그걸 그대로 봐 줄 수가 없었고, 그 비대위에 참여했다.(난 비대위는 아니었지만.) 번개 장소 선정하고, 번개 작업에 관공서와 협의해서 번개 아주 잘 처리했지. 11월 정모, 12월 정모도 대단히 잘 진행되었다.

  왜 A를 살렸는가? A가 우리 뜻대로 안돌아간다고 해서 그걸 버릴 필요는 없다고 봤거든. A는 A대로의 특징이 있는 거니까. 무엇보다도 A카페와 그 회원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으니까. A 카페의 소속된 사람들도 분명히 중요한 사람들이고 B카페는 그런 사람들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성 짙은 성격으로 형성된 거니까. 어찌보면 분명 서로 다르지만 끈끈한 관계 형성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비대위가 A를 살리고, 그 후속타는 나였다. A의 운영진을 맡은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없던 카페의 내규를 책임졌다. 문젠 그게 12월이고, 난 그때쯤이면 시험에 정신이 없어야 할 편입준비생이었다는 것. 그래도 내가 하기로 한 것이고, 내가 나름대로 경험이 있기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자청한 것이었으니까 후회는 없다. 그렇게 내규를 준비하다가 시험 시즌이 시작되었고, 때문에 내규는 메모만 되어 있을 뿐 정식 문서가 되지 못했다. 그 문서 완성은 1월 5일. 난 그날 단국대 시험을 보러 죽전까지 내려갔고, 죽전에서 집에 도착해 보니 무려 9시였고, 그때 연락을 받아 그 자리에서 메모를 그대로 옮기고 나름대로 내 초안에 대해서 의견 코멘트까지 남기면서 글을 작성해서 보냈다. 무려 45분만에.

  그 내규는 그대로 채택이 되었고, 나름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운영진 업무는 계속했지.

  (5) B카페의 발각(?)

  그 과정을 거치면서도 B는 우리의 활동을 착착 준비해갔다. 공개 카페로 전환하고, 준비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A카페에도 알릴 생각으로. 그랬는데 한 녀석의 눈치 없는(악의 없는) 행동으로 인해 이게 A카페에 전해졌다. 어이 없는건 전부다들 "우리는 배신당했어 ㅠㅠ" ... 아니 대체 뭐가 배신이야? B에서 A를 욕하길 했어 부정을 했어? A카페의 주축들이 다른 카페를 세웠다고 뭐 거기를 소흘히 하길 했어? 아니지, 그 전보다도 더 시간 투자해서 카페 기틀까지 만들어 놨더니 분열을 조장한다느니 어쩌고 저쩌고...

  파벌 싸움을 누가 하는지 일러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하간, 하도 해명들 하라고 해서 연속적으로 해명글을 올렸는데 이번에는 "상처 받았다." 드립과 "해명이 부족하다." 드립. 아니 해명이 부족하면 어떤 측면을 어떻게 해명하라는건지 알려라도 주던가. 무턱대고 그러더니 아예 '너네 걍 나가라.'소리까지. 지들이 지금 누구 때문에 붙어 있는데?!

  결국엔 하다하다 안돼서 탈퇴. 그 결정 내린 A카페 매니저한테 우릴 공격하던 모 회원이 한다는 말. "현명한 탕평이십니다." 아, 그래 탕평이 내쫓는걸 의미하는 거구나.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래 들 안보이게 해줬더니 B에서 첩자질 한 여자는 되돌아가서는 쌍욕을 해대고 앉았고.

  우리가 너네 건드리기 싫어서 다른 곳 만들겠다는데 뭘 그리 문제가 많은지. 막말로 궁금하면 묻던가. '그렇게 친했는데 말한마디 안하고 만들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물어보냐?'라는데 내가 참... 그 뿐이냐? 그들이 우리에게 상처받았다 배신당했다 타령하고 있을 때, 카페에는 계속 신입회원들이 들어오고 심지어 등업요청까지 있었다. 그거 처리 내가 했다. ㄱ- 내가 해명에만 급급했으면 그걸 했겠어? 그 뿐? 그 전에 건의글 쓴거, 그것도 내가 운영진 회의방에 올려서 초안쓰라고 해두기까지.

  해놓고 보니 얼마나 배알이 꼴리던지. 막말로 내돈 들여가면서 답사지 뽑고, 뽑는 정도가 아니라 그 내용들 전부다 내가 새로 쓰고, 그거 다시 자료 올려놓고 목이 터져라 설명하고. 설명해도 누가 물한잔을 줘봤냐. ㄱ- 답사 네 건 진행하면서 내가 니들한테 받은게 없다. 그뿐? 일 있을 때마다 무상으로 달려가서 공연까지. 우리 애들? 내가 심혈 기울여 기른 애들이고 나도 비록 지금은 전공생 아니라 취급 못받기는 하지만 그걸로 페이 받아가면서 프로무대까지 서 본 사람인데 그걸 그냥 공으로 왜 공으로 쳐드시게 했는데? ㄱ-

  (6) 결론 : 지랄도 풍년.